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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현대조선잔혹사…임금과 위험은 반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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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종사자 사망률 타업종의 두배
죽은 이들은 대부분 하청 업체 소속

밀착취재 위해 위장취업한 저자
"안전펜스, 발판만 제대로 설치됐다면"
추락·협착·낙하 등 재래형 사고 반복 지적
[책] 현대조선잔혹사…임금과 위험은 반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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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지난달 11일 현대삼호중공업 사내 하청업체 보광 소속 위씨(30)가 원유 운반선 내부 저장 창고에서 작업 중 15m 아래로 추락,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안전 펜스가 없었다. 하루 전인 10일에는 현대미포조선 사내 하청업체 세현 소속 김씨(41)가 사망했다. 페인트 통을 들고 수직 사다리를 오르다 손을 놓쳤다. 5m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해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 노동자 일곱 명이 죽었다. 다섯 명이 하청 업체 노동자였다.

2014년 기준 고용노동부 집계로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1850명이다. 특히 조선업 종사자의 사망률이 높다. 2015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사망 만인율은 0.53인 반면 조선업의 그것은 1.33이다. 전체 업종보다 두 배 이상 높다.(*사망 만인율:사망자 수의 1만 배를 전체 노동자 수로 나눈 값)
죽은 이들 대부분 하청 업체 소속이고 그들의 죽음에는 소리가 없다. 원청은 물론 정부도 언론도 시민도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만약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구의역 지하철 2호선을 홀로 고치다 허망하게 떠난 청년의 죽음처럼 조금은 더 주목받을 수 있었을까. 물론 일시적 관심이 해결을 보장하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신간 '현대조선 잔혹사'는 세계 1위 조선소인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의 삶과 일을 들여다 본다. 저자는 2012년 하청 업체에 위장취업했다. 그는 "그들이 조선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환경이기에 그토록 황망하게 사라지는지 보여줌으로써 현대를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연일 터지는 조선업 구조조정 뉴스에 '왜 노동자 네 명 중 세 명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지' 묻는다. 2015년 6월 기준 조선ㆍ해양업 기술직 노동자 중 13만5411명이 하청, 3만6362명이 원청 소속이다.

하청 업체 폐업은 이미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와 맞물려 진행된 세계경제 침체, 유가하락, 중국과 일본의 추격으로 국내 조선업은 진작 정체 상태. 2014년 12월 말 4만1059명이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는 1년 3개월 사이 3만3319명이 됐다. 7742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저자는 이들을 '사냥이 끝난 뒤 필요 없어진 사냥개'에 비유했다.

애석하게도 더 적은 돈을 받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위험을 떠안는다. 하청에도 급이 있다. 1차 사내 하청 노동자인 '본공', 2ㆍ3차 사내 하청인 '물량팀'. 본공은 상용제와 기간제로 구분되고 물량팀 역시 상시적 물량팀과 돌발 물량팀으로 나뉜다.

위험은 외주화된다. 더 아래에 있는 노동자일수록 명령된 생산 비용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 더욱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들은 안전 장치 없이 일판에 내몰리기 일쑤다. '불법 파견' 논란을 걱정하는 원청업체는 이들의 안전에 신경쓰지 않는다.

저자는 "안전 펜스 하나만 설치했다면, 신호수가 한 명만 더 배치됐다면, 발판만 제대로 설치했다면 어땠을까. 추락, 협착, 낙하 등의 재래형 사고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반복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죽지 않는 한 산업재해보험 혜택을 받기도 어렵다. 산재로 처리되면 하청업체가 원청과의 다음 계약을 맺는 데 장애물이 되는 탓이다. 산재 수에 비례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비가 올라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산재 사망률은 최고지만 산재 사고율은 최저다. 그만큼 산재 은폐가 많다는 방증이다. 용접공 김영배씨는 "산재 신청을 할 경우 실제로 불이익을 받는다. 현대중공업 내 하청업체 사장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 친구 받지 말라'고 공유한다"고 증언했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 미세한 철가루가 날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공간. 조선소에서는 하루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안전을 모른척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죽어나가고 있다.

<허환주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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