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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서 고액권 폐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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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악용' 내세워 폐지 주장…실상은 부양조치 걸림돌 인식 때문일수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과 유럽에서 때아닌 고액권 폐지 논란이 불붙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블로그에 "100달러 지폐를 없애야 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리면서 고액권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테러자금이나 마약 범죄에 쓰이는 걸 막기 위해 100달러 지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머스는 당장 100달러 지폐 폐지가 어렵다면 새로 고액권을 발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브누에 꼬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은 프랑스 일간 파리지엥에 ECB가 500유로 폐지를 검토 중이며 곧 결론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지난 15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500유로짜리 지폐가 범죄나 테러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고액권이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폐지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도 지난 7일 고액권을 없애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2년 전 500유로 지폐 40장을 속옷에 숨긴 채 이슬람국가(IS) 관계자를 만나려던 한 40대 여성이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체포된 사례를 소개했다.

하지만 범죄 때문에 고액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1986년 재무부가 위조 방지 화폐를 도입하던 당시 에드워드 코치 뉴욕 시장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마약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100달러 화폐를 폐지하자고 주장했고 서머스 전 장관도 오래 전부터 고액권 폐지를 주장해왔다. 캐나다는 2000년에 1000달러 지폐를, 싱가포르는 2014년에 1만싱가포르달러 지폐를 없앴다. 모두 범죄에 악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고액권 폐지 주장은 다시 불거진 시점이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화두로 등장한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묘한 여운을 낳고 있다. 범죄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고액권 폐지 주장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묘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ECB의 경우 2014년 6월부터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렸지만 기대했던만큼 부양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 ECB는 고액권이 ECB의 통화정책 효과를 상쇄시키는 주범으로 보고 범죄를 핑계 삼아 폐지론을 꺼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미국 온라인 경제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드라기 총재는 2012년에 500유로 지폐가 가치 저장 수단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드라기 총재가 강조한 가치 저장 기능은 ECB의 부양 조치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다. ECB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가계가 돈을 집 안에 쌓아두기만 하면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훌륭한 가치 저장 기능을 지닌 500유로는 유동성 함정의 원흉이 될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드라기 총재가 500유로 폐지를 검토하는 이유로 범죄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고액권의 가치 저장 기능을 파괴해 돈을 돌게 하고 부양정책 효과를 높이려는 이유가 숨어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드라기 총재는 오래 전부터 ECB가 돈을 풀어도 이를 돌게 하고 경기를 살아나게 하는 것은 소비와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몫이라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결과적으로 구조개혁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애꿎은 고액권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현재 사용되는 화폐 체계를 변경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고액권 논란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고 저널은 전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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