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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메르스 창궐과 예방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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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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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 메르스로 불리는 이 질병은 발열, 기침, 그리고 호흡곤란 같은 호흡기감염증을 가져오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기인한 것으로 치사율이 30~40%에 달하지만 특별한 치료약이 없어 매우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원래 중동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이 질병은 어느 한 사람이 중동 방문 중에 걸렸다가 국내에 들어와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모든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우리나라의 사망자 수는 19명, 확진환자 수는 154명, 검사 진행 중인 사람 86명, 격리자 5586명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질병은 환자와 밀접한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첫 환자만 잘 관리했으면 지금처럼 퍼지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않아 전 국민이 이름도 생소한 질병과 사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기에도 어렵게' 만든 것은 당국의 불투명하고 안이한 초기 대응 때문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킬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에 대한 당연하고 올바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초기에 적절하고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예방의 원칙'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것도 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예방의 원칙이란 어떤 행동이나 정책이 인간의 건강이나 생태계에 심각하고 비가역(非可逆)적인 피해를 줄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1992년 유엔(UN)환경개발회의가 발표한 리우선언에서 환경 보호를 위한 중요한 원칙으로 천명된 이후 1998년에 열린 전문가 학술회의에서 보건과 환경 위험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이어 2000년 생물종다양성에 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Cartagena Protocol on Biosafety)에서 유전자조작생물에 대한 각국의 대응 원칙으로 예방의 원칙을 승인하고 있고 2006년 유럽연합(EU)에서는 이 원칙을 아예 법으로 강제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 원칙은 기후변화, 멸종 위기 생물종, 유전자조작식품(GMO), 신종 전염병, 식품 안전 등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생명체에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는 사안을 다루는 대원칙으로서, 세계보건기구(WHO) 등 여러 국제기관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원칙의 목적은 EU가 분명히 하고 있듯이 인간이나 동식물의 건강이나 환경 보호에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정책 당국이 발 빠르게 재량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 큰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 이처럼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원칙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환자야 예상치 못했을 수 있지만 평택에서 발병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공개적이고 예방적인 대응을 미루다가 급기야 삼성병원에서 최대의 감염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예방의 원칙은 비단 정부 당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보건과 환경이라는 공공재를 지켜내기 위한 국제적 합의다. 따라서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은 전체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 예방적인 조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격리조치를 받은 사람이 무단으로 외출을 하거나 병원이 환자와 접촉한 의사를 감추거나 하는 행위는 살아있는 생명을 지키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우리 사회에 예방의 원칙이 사회 곳곳을 지탱하는 일반 원칙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바로 1년여 전 세월호 사건도 예방의 원칙을 소홀히 한 결과가 아니던가.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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