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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세상이 막장 드라마가 되지 않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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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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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화 '국제시장' 속 아버지 '덕수' 논쟁이 뜨겁다.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으로부터 멀어지고 세대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아버지, 즉 부권에 대한 논쟁은 곧잘 이념대결로 확장된다. 그러나 결론은 '이렇게 먹고 살만한 게 누구 때문인데'하며 또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곤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관객 1000만의 소비는 '아버지'를 갈구하는 아들, 딸들의 간절함을 변증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문화적 공복이 아버지 소비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영화를 본 아버지들은 '그땐 그렇게 살았지'라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참으로 아버지들의 희생이 존경스럽고 고맙다. 마음도 짠해진다.
그러나 늘상 "밥 먹여줘서 감사합니다"하는 식의 헌사가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그 시절, 덕수가 유보한 '꿈'과 '희망'은 우리가 진작에 바로 세웠어야 할 '민주적 가치'에 해당한다. 다소 이념 과잉으로 비쳐지겠지만 덕수의 삶을 옳게 평가하려면 덕수에게 희생을 강요한 시대도 함께 평가하는 게 옳다.

아버지와 자식의 시대는 다르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아버지들은 당장의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개인의 삶을 옹호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식솔의 목구멍에 풀칠시키기 위해 '개고생'하고 자신의 희망 따위는 뒷전인 채 다른 나라의 광산 막장과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징글징글한 사랑이 '한강의 기적'을 구가하고 오늘날의 경제 발전을 이룬 밑거름이란 걸 인정한다.
허나 아버지들은 반칙, 편법, 남을 짓밟고라도 올라서야 한다는 무한경쟁의 후유증과 민주주의와 인권, 정교한 사회 시스템 구축, 균형 있는 삶의 추구 등 여러 과제들도 자식들에게 함께 물려줬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이룬, 감사해야 할 세상은 어떤가. 이 순간에도 위기에 처한 자식들이 넘친다. 젊은이들은 직장이 없어 거리를 떠돌며 결혼하지 않는다.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신혼부부가 서울에서 소형아파트 하나 장만하려면 평균 13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야 한다.

또 고용 안정이 사라져 직장인들은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말을 빗댄 용어)'으로 내몰리고 월급이 2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이 태반인 판국에 수억, 수십억 원을 받는 대기업 임원의 보너스 잔치는 늘상 요란하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외환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산층은 줄어들고,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창업 인구의 20%가 1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 수십만 가구가 하우스푸어로 전락, 빚더미 위에서 생존을 영위한다.

이 땅은 병든 소, 돼지 몇 마리 처리하기 위해 천만의 생명을 파묻는 킬링필드를 이루며, 여전히 흐르는 강물을 막고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개발만능의 삽질천국이다. 또 '세상의 잉여'들은 세월호에 실려 폭풍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끌려가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이 희생과 헌신, 지극한 사랑만이 아니란 걸 이해한다면 세대 간의 화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너희들이 고생을 알아?'하는 투의 '가스통 할배' 같은 말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꽃다운 청춘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될 때처럼 '우리가 이룩한 나라가 이 지경이냐'며 눈물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다만 아버지의 유산 중에는 청산할 과제도 있다는 걸 알아줘야 비로소 자식들의 헌사가 완성된다.

파도 위에 국화꽃 하나 던지듯 잠시 자책하고 망각 속으로 묻어 버려서는 서로의 골만 키울 뿐이다. 허면 자식들도 잘 그려진 영화 한 편에 눈물과 소주 한 잔을 말아먹고는 모든 헌사를 다 바쳤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세상이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는 이유는 '최루'에 취하더라도 '줄줄 새는 눈물'을 자를 수 있는 눈꺼풀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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