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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한국의 지성' 일군 한국 책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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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 히데키 교수, 한·일 지식인 140명에게 물었다

한국의 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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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지난해 봄, 한국과 일본에 있는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국의 '지(知)'를 알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한국의 '지'와 만나게 해 준 책을 1~5권 추천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 주세요." 발신인은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국제교양대학교 교수다. 한글의 혁명성을 말하는 책 '한글의 탄생'으로 2012년에는 외국인 최초로 한글학회가 주관한 주시경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한국의 지'에 대한 수집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 일본에서 영화, 미술, 문학 등 한국문화는 높은 평가를 얻고 있지만 막상 '한국의 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어권에서 감상하고 누리고 애호하며 감동하는 대상으로서 한국의 문화는 존재해도, 읽고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고투를 벌이며 함께하고 자기 것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대상으로서 한국의 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이 과감한 '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하는 동력이 됐다.
지식인들의 답장을 받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첫 응답률은 고작 20%에 불과했다. 한국의 지에 대해 일본어권 필자들은 "너무 아는 바가 없다"고 사양했고, 한국어권 필자들은 "주제가 너무 방대하다"며 고사했다. 하지만 노마 히데키는 "한국의 지와 스친 순간을 공유해 달라"며 다시 한 번 설득에 나섰고, 이렇게 해서 한국 46명, 일본 94명 등 총 140명의 지식인이 참가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결과물은 일본에서 먼저 출간돼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상인 파피루스상을 받았다. 한국어판은 '한국의 지知를 읽다'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됐다.

노마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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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이 손꼽은 한국의 '지'는 다양하다.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한국 지식인의 지적인 발자취를 알고 난 뒤 지적 흥분을 느낀 것은 1970년대였다. 한국의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했다"며 고(故) 리영희의 '분단민족의 고뇌'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던 리영희에 대해 와다 하루키는 "문장의 치밀함과 예리함은 놀라고도 남을 정도지만 인품은 실로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출판인 류사와 다케시는 김구의 '백범일지'를 두고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반성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내셔널리즘이 '자기기만에서 나오는 권력욕이나 체면 경쟁, 세력 확장'이라면, 애국심은 '자신이 속한 특정 지역과 생활양식에 대한 헌신'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김구의 것은 애국심에 속한다는 것이다.

한국 지식인들 중에서 건축가 승효상은 한국의 지에 관한 책으로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추천했다.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투쟁 관계로 파악하지 않고 계급 문제를 대결 구도로 이끌지 않았다"는 평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인 한국전쟁이 불러일으킨 이데올로기 문제, 말이 감시당하고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의 권력 구조 문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밑거름이 됐던 산업사회의 문제들"이 세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지식인이 본 일본에 대한 고찰도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일본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인 문예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소개하며 저자의 통찰에 감탄한다. "일본인은 '축소할' 때에는 독창적이고 훌륭하지만 '확장'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아 파탄을 맞이하고 만다고 저자(이어령)는 말하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메이지 이후의 일본 국가가 그 예다. 패전 후 일본인은 '축소'로 독창성을 실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140명의 지식인들이 추천한 책 중 일부는 중복되기도 했다. 일본어권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이기도 한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이었고, 다음이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한국어권 필자들이 중복 추천한 책은 '김수영 전집',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가장 많았고,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 박경리의 '토지', 이상의 '정본 이상 문학전집'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지'를 책의 형식으로 추천받은 것에 대해 노마 히데키는 "지를 지탱하는 토대는 책"이라며 "책 없이 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알지는 일본에서 건너간 고대 조선인이며, 탈해왕은 고대 일본 출신의 신라왕"이라고 주장한 문학자 나쓰이시 반야의 경우처럼 불편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를 이해하고 기록해 나가려는 이방인의 시도와 노력만큼은 부끄러운 마음을 들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를 알기 위해서, 혹은 일본의 '지'를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가 반문하게 된다. 노마 히데키는 앞으로 한국의 '미'와 '마음'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이다.

(한국의 지知를 읽다 /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만8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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