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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1%의 영감이 핵심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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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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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타이거 우즈를 꺾고 미국프로골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세계적 선수가 된 양용은이 귀국했을 때 한 아마추어 골퍼가 골프를 잘하게 된 비결을 물었답니다. 양용은 선수는 그를 바라보며 "연습은 많이 하세요?"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비결을 찾지 말고 연습을 충분히 하면 잘하게 된다는 뜻이었겠지요.

절대적으로 연습을 많이 하면 결국 잘하게 된다는 생각은 2008년 맬컴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 라이어'를 통해 이른바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누구든 1만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생각은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가 1993년부터 펴낸 매우 유명한 몇 편의 논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팀은 뛰어난 악기 연주자나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무엇이 그들의 성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해서, 결국 누적된 연습시간 총량이야말로 훌륭한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가슴을 치곤 합니다. 좀 더 자주 연습을 했어야 하는데. 왜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걸까. 밀려드는 회한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말씀도 새삼 머리를 때립니다.

그런데 최근 몇몇 언론매체에는 '1만시간의 법칙은 거짓이다'라는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 페이스북에도 "노력 따위 다 소용없대. 천재는 타고난대"라는 식의 글들이 넘쳐났습니다. 이런 기사들의 원천이 된 논문은 이달 초 '심리과학'이라는 학술지에 실렸는데, 자극적인 기사들과는 달리 제목도 밋밋하고 약간 따분하게 보이는 학술적인 논문입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지금까지 발표된 9300여개의 논문을 검토해서, 특히 누적된 노력과 성과와의 관계를 다룬 88개의 논문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과연 오랜 시간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성과(전문가로서의 성과)를 내는 것이 맞는지 살펴봅니다.

이들에 따르면 음악에서는 약 21%, 운동에서는 약 18%, 교육에서는 약 4%의 성과차이만이 누적된 연습시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 잘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왜 잘하게 됐나요?"라고 묻는 과거지향적인 질문을 사용한 연구(이런 경우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살벌하게 연습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답하기 십상이지요)를 제외시켜 보니 누적된 연습시간과 성과차이는 겨우 4% 정도만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게다가 비록 소수지만 너무 많이 연습하면 오히려 성과가 나빠진다고 주장하는 연구들마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뿔싸. 연습이 답이 아니라네요. 사실 저는 살면서, 연습량이 아니라 선천적 천재성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발휘하는 천재들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에디슨의 말도 사실 노력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1%의 영감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는 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절망해야 할까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논문은 누적된 노력이 별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을 뿐, 선천적인 재능이 핵심이라는 걸 확인한 건 아닙니다. 어쩌면 좋은 친구가,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면 취미생활이 좋은 성과의 원천일 수도 있습니다.

또, 결국 선천적인 재능이 성과의 핵심이라 해도 슬퍼할 일은 아닙니다. 세상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만을 위한 놀이터는 결코 아니니까요. 이 세상은 조금 모자란 우리들도 서로 어울려 훌쩍거리고 킬킬거리며 살아갈 권리가 있는 곳이니까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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