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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협력의 딜레마, 숟가락 얹기

최종수정 2020.02.11 14:03 기사입력 2014.07.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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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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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이런저런 공동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어렴풋이 느낀 것인데 최근에야 그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리할 수 있었다. 공동연구과제는 연구책임자를 위시해 적게는 두세 명, 많게는 열 명 넘는 교수들이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다. 여러 학과 사람들이 섞이다 보니 개중에는 숟가락만 얹는 교수들도 있고, 더 기막힌 경우는 숟가락만 얹는 교수가 일하라고 데리고 온 학생도 자기가 지도교수인 줄 알고 같이 숟가락만 얹는 것이다. 80ㆍ20규칙 또는 파레토 법칙으로 잘 알려진 롱테일(long-tail) 현상은 조직 운영에서도 곧잘 발견되는데 조직의 80% 일을 20%의 구성원이 한다는 것이다. 즉 숟가락만 얹는 사람이 80%가 되는 셈이다.

최근 참여하고 있는 공동과제에서 일이 갑자기 많아져 며칠 내내 늦게 귀가했다. 다른 일도 잔뜩 밀려있고 몸도 피곤해서 그날따라 숟가락만 얹는 사람들이 미워졌다.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불교적 마인드를 지닌 남편이 이렇게 조언했다. 인간 관계에서 남을 바꾸기란 어려우니 자기가 바뀌어야 하는데 남들이 숟가락만 얹는 상황이 싫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라는 것이다. 나도 남들처럼 숟가락만 얹던가, 아니면 남들이 숟가락 얹는 바람에 조금 일해도 티가 나니 그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긴 남들이 다 열심히 일해버리면 내가 어지간히 일해도 티도 안 날 것이다.
내 성격에 도저히 숟가락만 얹을 수는 없어서 두 번째 방향으로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니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로는 전날 들은 해결책이 이해가 됐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남편의 도움을 구했다. 그랬더니 전날 말해주지 않은 세 번째를 알려줬다. 내 딴에는 내가 열심히 일하고 남들이 숟가락 얹는 것 같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내가 숟가락 얹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남들도 잔뜩 쌓인 일을 하면서 짬을 내 공동과제를 하는데, 남들 형편이 돼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처한 조건에서 열심히 하는 것인지 숟가락만 얹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반대로 내가 열심히 일해도 나보다 더 엄격하고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는 숟가락만 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던 차에 어떤 포럼에서 정신과의사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심리상담에서 50ㆍ50 룰이 있는데 자기가 남들에게 최대한 받고 싶은 인정이 100%라면 실제 남들은 나를 최대한 50%밖에 알아주지 않고, 반대로 자기 역시 남들을 100% 인정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아봤자 50%밖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숟가락 얹는 문제에 대해 나름 최종 정리를 했다. 첫째, 남들이 그나마 숟가락만 얹어주어서 고마워해야겠다. 젓가락까지 휘저어대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가. 둘째, 나도 가끔은 숟가락만 얹자. 내가 꼭 아니더라도 롱테일 앞단 20%는 어딘가 있을 테니까. 셋째, 남들한테 100% 인정받고 싶으면 200% 일을 하자. 그나마 절반 인정받아야 100%가 되니까.
그 와중에 다른 공동연구사업으로 여러 명이 아프리카 출장을 가게 됐다. 개도국에 과학기술중심대학 건립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현황을 파악하고 상대국 정부의 협조를 얻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런데 공동연구로 해외 출장을 가본 이래 이렇게 모두가 열심히 일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출장 가기 전 각자 맡은 부분에서 현지에 굳이 가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을 꼼꼼히 조사해놓고, 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일주일 내내 정부 부처, 대학, 연구소, 비정부기구(NGO) 등을 뛰어다녔다. 숟가락 문제에 마음을 정리했더니 숟가락 문제가 사라져버렸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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