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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검찰 특수부, 신화에서 몰락까지

최종수정 2014.03.23 12:00 기사입력 2014.03.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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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조작 한방으로 무너진 특수부…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남긴 교훈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거악(巨惡)을 잠들게 하지 않는다.’

일본 국민에게 검찰 특별수사부는 자랑이자 자존심이었다. 권력의 부패에 맞서 법과 원칙을 실현하는 정의의 대변자로 인식됐다. 특히 도쿄지검 특수부의 활약상은 ‘신화’와 다름없었다.
일본 교도통신 법조기자를 지낸 우오즈미 아키라가 지은 <파워검찰>이라는 책에는 일본 국민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특수부 검사들의 활약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정계와 재계를 주름잡던 실력자들이 도쿄지검 특수부 칼날 앞에 줄줄이 쓰러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1976년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록히드 사건이다. 일본 ANA 항공이 록히드 여객기를 구입하는 과정에 정계의 거물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1976년 2월4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정계에 발이 넓은 ‘고다마 요시오’라는 인물이 록히드로부터 700만 달러의 비밀 컨설턴트 비용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다마가 한때 미국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던 우익 군국주의 집단의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A급 전범용의자’로 평가받던 고다마가 미국 기업 로비를 위해 일본 정계에 거액의 자금을 뿌렸으니 일본과 미국 모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 정부는 거액의 뇌물을 받은 일본 정계 인사의 명단을 일본 쪽에 건네주는데 주저했다. 당시 키신저 국무장관은 “(뇌물을 받은) 정부 고관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상대국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대국 안정을 해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거물이 연루됐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끈질기게 설득했고 미국 정부는 단서를 달고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자료는 극비를 조건으로 수사기관에 교부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키 수상도 명단에 담긴 이름을 알 수 없게 할 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다. 007 첩보작전 뺨치는 행보를 이어가며 미국으로 건너가 자료를 확보한 주인공이 바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다.

자료에 담긴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본 정계의 실력자이자 전직 총리였던 다나카 카쿠에이가 총리 재직 시절인 1972년 고다마에게 5억 엔의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다나카는 격렬히 저항했다. 자민당 실세 정치인들과 합심해서 1976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키를 퇴진시키려 했다. 검찰 수뇌부도 고심했다. 적극적으로 파헤친다는 얘기는 미국 정부가 경고한 것처럼 일본 정국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정치적 외압을 버텨낼 강단 있는 검사로 수사팀을 구성했다. 결국 일본 검찰총장은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마음껏 수사하라”고 특수부를 독려했다.

특수부 검사들은 철저하게 증거를 수집하며 다나카를 압박했고, 결국 다나카는 혐의 사실을 시인했다. 다나카는 총리 재직 시절 직무와 관련한 부패로 구속 기소된 첫 번째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결국 다나카는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일본 전후 최대 부패스캔들이라는 록히드 사건 수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일본 검찰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들의 무용담은 이웃나라 한국으로 전해졌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용담은 어느 정도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일본 검찰 특수부 무용담도 과장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일본 검찰이 실제로는 권력의 반대파 숙청을 위해 이용됐을 뿐이라며 평가절하 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미국 정보기관이 일본의 반미정치인을 견제하고자 일본 검찰에 정보를 흘렸다는 ‘음모론’도 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도 있고 과도한 지적도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 검찰 특수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 배경이다. 하늘을 호령할 것처럼 보이던 권력자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일반인처럼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배경 아닐까.

일본 검찰 특수부, 신화에서 몰락까지
신화와 같은 무용담을 써내려가던 일본 검찰 특수부에 ‘사고’가 터진 것은 2009년이다. 일본 오사카지검 특수부는 장애인 단체가 우편할인 제도를 악용해 거액을 챙긴 혐의를 잡고 수사에 들어갔다. 사건에 연루된 일본 노동성 소속 공무원 집에서 결정적 증거로 활용될 플로피디스크를 압수했다.

문제는 플로피디스크 업데이트 날짜가 검찰의 공소사실과 맞지 않아 핵심 증거가 오히려 검찰 주장을 흔들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사건 담당 마에다 검사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바로 ‘증거조작’이다. 검찰의 혐의 입증을 뒷받침하도록 플로피디스크 업데이트 날짜를 조정했다. 일본 검찰 최고 엘리트가 집결해있다는 특수부, 그 중에서도 ‘에이스’로 불리던 마에다 검사는 이 사건으로 구속됐고, 보고라인에 있던 검찰 윗선들도 줄줄이 소환됐다.

일본 사회는 동요했다. 상실감이 컸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던 검찰 특수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큰 충격이었다. 일본 검찰이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간 배경에는 국민의 믿음이 든든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증거조작 한방으로 국민 신뢰를 잃고 말았다. 그 여파로 일본 검찰총장은 사퇴해야 했다.

역사는 교훈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웃나라 얘기라고 흘려들어서는 곤란하다. 한국 검찰은 지금 간첩 ‘증거조작’이라는 엄중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적당히 덮을 수도 대충 넘어갈 수도 없다는 것은 검찰도 잘 알고 있다.

검찰은 일본 검찰 특수부의 사례를 보고 교훈을 얻었을까. 검찰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국민신뢰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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