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영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림은 단지 참고인 신분에 불과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경찰에서는 개를 쏘아 죽인 사실 보다는 그날 있었던 총기 사고에 더 관심이 맞추어져 있었다. 엽총이라지만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았는데다 피해자가 병원에 누워 있었다. 자연히 그날 심문은 이층집 영감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다 따라온 송사장이 뭐라 하고 갔는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영감은 입을 꼭 다물고 소파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한 인간에겐 하나의 역사가 있다. 아무리 초라하게 늙은 인간이라 해도 한 세상을 살았다면 한 세상을 살아온 만큼의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밀랍 인형 같이 앉아있는 영감의 얼굴에도 그런 세월의 범할 수 없는 흔적 같은 것이 보였다.
언젠가 남경희가 말했다.
그냥 그렇게 늙어갔다면 어쩌면 그 역시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늙은이 중 팔자 좋은 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경희의 말에 의하면 그는 늘그막에 남은 그의 생애를 뒤흔들어놓고 말 사건에 마주쳤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찾아 늘그막에 찾아간 베트남에서였다. 거기에서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죄악의 기억, 학살의 기억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곳 옛날 격전지 마을 입구에 서있던 <한국군 증오비>였다.
남경희가 말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우리 아버지 역시 드러내놓고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 모종의 추악한 일에 관련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해요. 빨래하러 나온 베트남 여성들을 강간하고....죽인 사건이지요. 그 사건으로 몇 명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마침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예외가 되었죠. 하지만 그 일은 아버지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 남겨졌을 거예요. 카인이 어딜 가서 숨던지 그의 이마에 새겨진 죄의 표시, 동생을 돌로 쳐 죽인 그 용서받지 못 할 죄의 표시가 영영 지워지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그 후 아버지는 열심히 교회에 나가셨어요. 무언가에 매달린 사람처럼 말이예요. ”
바람 불던 날 그녀가 해주었던 말들이 그대로 떠올랐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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