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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3장 떠나가는 사람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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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3장 떠나가는 사람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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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자면 원하던 방향 보다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 태초로부터 우주가 일정한 방향을 향해 진화하여 왔고, 진화해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우주에도 어떤 알 수 없는 목적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그 전지전능한 신이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장남삼아 이 우주를 창조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광대한 우주에 있는 모래알보다 많은 별들도, 그리고 그 별무리 중 하나인 은하계에도, 그리고 그 은하계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태양계에도, 그리고 이글거리는 거대한 가스덩어리인 태양과 그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에도, 그리고 그 행성 중의 하나인 지구에도, 그리고 그 지구에 피어난 각종 생명들도, 그 생명 중의 하나인 인간에게도, 모두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창조주이신 태초의 디자이너에 의해 디자인된 대로 움직인다. 따라서 모든 것은 태초에 이미 필연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구하고 무궁한 시간 이후, 마지막 진화의 단계에서 마침내 창조주의 뜻이 따라 진화의 꽃, 곧 천년왕국이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메가 포인트라고 한다.
하지만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태초도 그저 우연이며, 그 이후의 전개과정도 무수한 경우의 수들 중 하나가 맞아 떨어져 일어난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의 기우뚱한 불균형으로부터 발생한 우주의 시작은 물론이고, 밤하늘의 모래알보다 많은 무수한 별들이 만들어진 과정도 우연이며, 그 별무리 중 하나인 은하계가 태어난 것도, 그 은하계의 한 모퉁이에 태양계가 생겨난 것도, 그리고 거대한 가스덩어리 태양과 그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과, 그 행성 중의 하나인 지구가 기가 막히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약간 기울어진 채 태양의 주변을 돌게 된 것도, 그리고 그 덕분에 이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이 존재하게 된 것도, 또 그 가운데 인간이란 존재가 생겨난 것도, 모두 확률이 매우 낮긴 하지만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다만 그때그때 수리공이 땜방을 하듯 환경에 따라 적응해왔던 것뿐이다. 따라서 그곳에 선(善)이 자리 잡을 여지도 없고, 악(惡)이라고 해야 할 여지도 없다. 우주에 목적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역시 아무런 목적이 없다. 그저 다른 곤충이나 파충류, 혹은 아메바나 짚신벌레처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고 있을 뿐이다. 파리에게 왜 사느냐고 물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도 왜 사느냐 따위의 질문 역시 무의미할 뿐이다, 고 한다.
하지만 우연의 바다는 허무의 바다와 다름 아니다.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이라면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발버둥쳐야 하는 인간의 삶 역시 한낱 바람 같은 것일 것이고, 역사니 정의니 사랑이니 하는 모든 감정도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옳은가는 각자의 신념에 달려 있다. 과학이 인도할 수 있는 한계는 거기까지이다. 양자역학이 발견한 불확정성의 논리 앞에 서야했던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결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 중얼거렸던 것도, 모든 것을 우연의 바다 위에 던져버릴 수 없는 신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림 자신은 어떤가.
하림은 모든 이데올로기는 허구며 장식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생명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는 종종 다른 생명과 생존 훼손을 정당화한다. 지배와 종속을 강요하고, 자유를 박탈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는 것처럼 우주에도, 인간의 삶과 역사에도,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 모른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하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며칠 동안 어수선한 상태로 지냈다. 경로잔치가 그렇게 깽판으로 끝난 이후였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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