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타인의 부정행위로 공들여 준비한 시험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어떤 심경일까? 최근 하버드 대학의 기말고사 집단 부정행위가 충격을 주었다. 토익 등과 같은 인증시험에서 대리시험 부정행위가 계속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2012학년도 수능에서도 부정행위자 160명이 적발됐다. 이런 행위는 오늘만의 얘기는 아닌 듯싶다. 가문의 흥망마저 좌우할 아주 중대한 시험이 번복돼 충격을 받은 조선 선비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과거를 이틀 동안 다 무사히 본 후에 선비들이 남을 데리고 든 사람이 있다고 하여 (합격자) 방을 내지 않고 그 과거를 파장(罷場)하고 다시 회시(會試)를 보게 하여 처음에는 (회시 보는 날을) 8일로 정하였다가 또 16일로 연기했는데 그날이나 반드시 볼지(시험이 치러질지), (이 후로) 머물기가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처음은 초시를 파방하고, 감시(생진사시)의 회시도 다 파방해야 옳다고 하는 의논이 있어 상소도 하였는데, 감시의 회시는 파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가 볼 동당은 어떻게 될 줄 아직 모르겠지만 16일이 다다르면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날 (과거를) 보아도 방은 22~3일 사이에 나올 것이니 (어머님께) 돌아가기 점점 멀어져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이동표가 언간-20)
그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기생들인 나주목사 윤이익(尹以益)과 청산현감(靑山縣監) 홍제형(洪濟亨) 등 10여명이 차서(借書, 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지 글씨만 대필해 주는 일)나 차술(借述, 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 내용을 작성해 주는 일)의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를 발견한 응시생들이 시관(試官)에게 고발했다. 결국 숙종과 대신들은 논의 끝에 시험을 취소하는 파방을 결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 내용은 실록에도 소개돼 있다.
결국 이동표는 다른 응시자들이 과거 시험장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바람에 초시와 회시 합격이 모두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에 이동표는 집에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이동표는 6년 뒤인 1683년 실시된 과거에서 향시에서는 2등, 회시에서는 장원을 하며 과거에 급제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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