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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장원급제 취소된 조선선비의 한글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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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표가 언간-20

이동표가 언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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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과거를 이틀 동안 다 무사히 본 후에 선비들이 남을 데리고 든 사람이 있다고 하여 (합격자) 방을 내지 않고 그 과거를 파장(罷場)하고 다시 회시(會試)를 보게 하여 처음에는 (회시 보는 날을) 8일로 정하였다가 또 16일로 연기했는데 그날이나 반드시 볼지(시험이 치러질지), (이 후로) 머물기가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처음은 초시를 파방하고, 감시(생진사시)의 회시도 다 파방해야 옳다고 하는 의논이 있어 상소도 하였는데, 감시의 회시는 파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가 볼 동당은 어떻게 될 줄 아직 모르겠지만 16일이 다다르면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날 (과거를) 보아도 방은 22~3일 사이에 나올 것이니 (어머님께) 돌아가기 점점 멀어져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이동표가 언간-20)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일부 응시자들의 대리시험이 발각돼 시험자체가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단연 장원급제 대상자였을 것이다. 그 주인공인 조선 선비 이동표가 자신못지 않게 상심이 클 어머니를 위로하는 한글편지다. 편지원본은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다.
오는 19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는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를 열고 과거를 본 선비 이동표(李東標, 1644~1700년)가 파방 소문에 대한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걱정하실 어머니를 달래는 내용의 편지를 소개한다.

지난 1677년(숙종 3) 2월에 실시된 과거 회시(會試, 과거에서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2차로 치르던 시험)에서 응시생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당시 이동표는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할 것으로 예상됐고, 실제로 취소된 시험에서 장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동기생들인 나주목사 윤이익(尹以益)과 청산현감(靑山縣監) 홍제형(洪濟亨) 등 10여명이 차서(借書, 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지 글씨만 대필해 주는 일)나 차술(借述, 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 내용을 작성해 주는 일)의 부정행위를 저지르자, 이를 발견한 응시생들이 시관(試官)에게 고발했던 것이다. 결국 숙종과 대신들은 논의 끝에 시험을 취소하는 파방을 결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 내용은 실록에 소개돼 있다.
이처럼 이동표는 다른 응시자들이 과거 시험장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바람에 초시와 회시 합격이 모두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이동표는 파방 소문이 난 후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집에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이동표는 6년뒤인 1683년 실시된 과거에서 향시에서는 2등, 회시에서는 장원을 하며 과거에 급제했다.

이래호 한중연 연구원은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소식을 듣고 놀랄 어머니만을 걱정하고 있지만, 이동표가 같은 해(1677년) 8월과 10월에 다시 실시된 초시와 회시에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때의 충격은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기말고사 집단 부정행위가 충격을 주었다. 토익 등과 같은 인증시험에서 대리시험 부정행위가 계속 보도되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2012학년도 수능에서도 부정행위자 160명이 적발됐다.

전경목 한중연 교수는 “조선시대에 과거만이 가문을 일으키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대접받으며 사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과거에서 부정행위가 빈번히 일어났고, 그 때문에 과거가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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