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선량한 의사가 되는 것은 개인의 몫은 아니다. 의학을 공부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가 되는 것까지는 개인의 노력의 몫이라 하더라도 선량한 의사가 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사회를 고치는 의사를 대의라고 하지만 사실 선량한 의사를 만드는 것은 다시금 사회의 몫이라는 복잡한 관계가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것은 두 점을 잇는 단선적 관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회의 수많은 관계 그물망 속에서 하나의 선만 특별히 표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단, 의사는 의료행위라는 것을 통해 그것을 도와주는 일을 할 뿐이다. 직장생활의 야근으로부터 생긴 요통과 가정생활의 스트레스로 생긴 화병을 원인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학적 치료로 근본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사 또한 매일 내원하는 환자 수와 매출을 고민해야 하고, 약을 처방하면서도 보험수가를 생각하고, 보험급여 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이 현재의 서글픈 현실 중의 하나이다.
그 부분에서 정책이라는 부분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생긴다. 아마 과거 대의(大醫)라고 칭하는 의사는 의사 개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훌륭한 정책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 좋은 국가정책은 국민을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정책일 테고, 좋은 의료정책은 환자와 의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정책일 것이다.
이제 한의학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될 시기다. 한의약이 공공의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한ㆍ양방이라는 의료 이원화 체계 속에서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제도는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지 등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은 늘어가고 복잡해져 가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한의학 분야에서 정책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정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한의학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에도 지난해부터 한의학정책연구센터가 설립되어 한의학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하고 있다. 향후 소의(小醫)와 중의(中醫), 나아가서는 대의(大醫)와 선의(善醫)를 기반으로 하는 제대로 된 국가 한의학 정책의 청사진을 기대해 본다.
이준혁 한의학연구원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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