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에 살상용으로 개발됐던 핵무기 기술이 핵발전으로, 독일이 유보트를 개발하며 얻은 기술력이 심해 탐사 잠수정에 사용된 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일가가 유럽으로 떠난 이유도 속단할 수 없는 유럽경제에 대한 고민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도피처로 유럽을 선택했다고 지적한다. 삼성그룹 내부서도 아버지인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을 놓고 형제들과 다투다 보니 해묵은 감정싸움까지 벌어져 자성의 의미로 유럽행을 택했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삼성전자만 잘하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경쟁사의 공격을 한 몸에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1등과 2등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4주간의 대장정을 통해 이 회장은 유럽 각국을 방문하고 경제위기의 실상을 파악할 예정이다. 개인, 회사 모두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을 찾으러 나선 것이다.
지난 2일 유럽으로 떠난 이 회장은 스페인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여기에서 어떤 해답을 들고 올 지 주목되는 이유는 그간 위기때마다 보여 준 이 회장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하자는 '신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2005년에는 삼성그룹의 디자인 경쟁력을 세계적인 명품 수준으로 끌어올려 달라며 '디자인경영'을 내세웠다.
두 시기 모두 이 회장은 주요 계열사 사장들을 유럽 현지로 불러 모았다. 올해도 삼성그룹 사장단들은 혹시 모를 이 회장의 호출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위기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왔던 이 회장이 다시 한번 새로운 주문을 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을 책임질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동행했다. 이 회장 입장에선 두 자녀에게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 보는 혜안을 직접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이 회장 일가의 움직임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질적 성장에 집중하자, 디자인 경영하자고 한마디 하면 될 것을 이 회장은 '위기를 직접 보라, 이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구성원들이 위기를 진짜 위기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나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과거의 사례로 보면 이 회장은 유럽 현지의 위기를 직접 보면서 진단하고 이를 돌파하는 혜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경제를 놓고 새로운 도약이냐, 붕괴냐 속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회장의 입에 주목하는 이유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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