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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김명인의 '저 능소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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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몇 송이로 펼치는 생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천근 사랑 같은 것,/그게 암 덩어리라도 불볕 여름을 끌고/피나게 기어가 그렇게 스러질/너의 여름 위에 포개리라

김명인의 '저 능소화' 중에서

■ 능소화를 처음 본 것은 진안 마이산의 벼랑이었다. 산 덩어리가 온통 바위 하나인 그 한 복판에 붉은 화등을 달고 피어있는 꽃이 강렬했다. 영어로 트럼펫 크리퍼(trumpet creeper)라고 부르는 이 꽃은 한번 피면 쉬 꽃송이를 내려놓지 않고 한달 이상씩 매달고 있다. 공들여 하나하나 곱게 피워낸 것들을 쉬 버릴 수 없는 애착 때문일까. 왜 그냥 능소화가 아니고 '저' 능소화였을까. 절벽에 붙은 능소화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저'는 그 상승의 거리다. 지금은 아직 낮지만 존재의 모든 상처들을 지고 올라갈 자리다. 능소화를 암 덩어리로 피워올린 시인의 눈에는, 세상과의 처연한 불화를 통해 더욱 긴장하는 아름다움이 보였는지 모른다. 뜨거운 여름날 불덩이같은 바위를 기어올라가는 능소화의 독종같은 생명력. 그 풍경을 들끓는 기분으로 읽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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