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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대통령黨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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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개월. 우리나라 정당의 평균 수명이다. 가장 장수한 당이라고 해봐야 20년이 채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이 1963년 2월부터 1980년 10월까지, 고작 17년 8개월여 존속했다.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이 100년을 넘어 200년을 바라보는 데 비하면 초라하다. 정당 정치의 역사가 일천한 까닭에 비교하는 게 무리라곤 해도 너무 단명하다.

선거 때마다 급조된 정당, 정당 간 이합집산이 많았던 탓이다. 1987년 이후 113개의 정당이 생겨났다가 없어졌다. 정작 국회의원을 보유했던 정당은 40개에 지나지 않는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30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만 해도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통합진보당 등 20개다. 여기에 당을 새로 만들겠다고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한 곳도 13개에 달한다.
단명함 못지않게 별스러운 게 또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어김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ㆍ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민주자유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의 새천년민주당이 다 그렇다. 그것도 자유당과 공화당을 빼면 하나같이 대통령이 제 손으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당을 허물었다.

민정당 간판으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월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을 하며 민정당을 버렸다. 민자당 당적의 김영삼 대통령도 1996년 2월 총선을 앞두고 당 쇄신을 이유로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등을 영입해 신한국당을 창당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 역시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을 세웠다.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이듬해인 2003년 11월 지지 세력의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었다.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과의 차별화를 위해 당 해체를 주도한 경우도 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에 김영삼 대통령의 실정 등으로 위기감을 느낀 신한국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1998년 11월 대선 직전에 '꼬마 민주당'과 합당하며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김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다. '백년 정당'을 표방했던 열린우리당이 채 4년도 못 버티고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바뀐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이유야 어찌됐든 대통령을 낸 정당이 사라졌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두 번의 대선 패배에도 14년 3개월여를 버텨 왔지만 곧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미래 권력이 이 대통령의 실정과 비리의 얼룩이 덧칠된 한나라당 간판으로는 대선은 고사하고 당장 눈앞의 '4ㆍ11 총선'에서도 이기기 어렵다고 본 때문이다. 유독 선거 때만 되면 당 간판을 바꿔 다는 일이 되풀이해 생기는 건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운 일이다.

정당은 다양한 사회적 이해와 요구를 조직화시켜 정치에 반영하는 민주정치의 핵심 도구다. 정당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정당법 제2조)이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정권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을 잡은 그 이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수의 직업 정치가들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만든 득표조직으로 전락했다. 공자님 말씀을 빌리면 정당답지 않은, '정명(正名)'이 아닌 꼴이다. 그러니 단명이니, 대통령당 몰락이니 하는 사단이 벌어지는 것이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어느 한 당은 대통령을 배출할 것이다. 그 당의 앞날이 어찌 될지는 그러나 누구도 모를 일이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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