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쓰이는 보통어와 홍콩 광둥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 눈에는 다 똑같은 중국인들이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홍콩 사무소 친구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고 강조하더군요. 그 이후에도 같은 이유로 겉보기로는 '중국인'들이 모여 대화는 영어로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우리와 일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인이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근 몇 번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저 때문에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못 참겠다는 듯 중국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 소외감 내지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제 서양 친구들 가운데도 중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란 눈의 친구들이 '뿌지엔뿌샨(꼭 만나자') 운운하거나 간자를 나름대로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기분이 아주 요상합니다. 영국의 최고 명문 사립학교 이튼스쿨에서 '앞으로 너희는 중국인들 밑에서 일하게 될 테니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교사가 있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3년 넘게 중국어를 배워 이젠 중국인으로 오인될 만큼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선배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역시 실속이 있으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다가 돌아온 그 선배의 대답에 저는 한 방 맞은 기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선배는 자신이 중국어를 배우는 이유가 중국을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 어떤 이익을 보려는 생각이 전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그 선배의 업무는 중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도 합니다.
그는 중국은 우리 이웃이고 이웃을 잘 알고 이해하려면 그 언어를 알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 동안 언어란 어떤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영향력 큰 나라의 말을 배워야 한다고 의심없이 믿어왔을까요?
아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게임을 배우고, 아내와 친구가 되기 위해 백화점에 따라가는 것처럼 이웃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이웃과 서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좋은 친구가 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저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언어는 이해를 돕고 그 이해는 관계로 이어진다는, 그래서 상대의 말을 아는 것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지름길임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저는 제 안의 사대주의를 쑥스러워하며 중국 영화 하나를 골라봅니다. 아, 사실 중국 영화는 졸린 경우가 많지만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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