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도가니法'
국회도 들끓는 여론을 인식한 듯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기하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뒷북이다. 아시아경제가 국회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국회는 지난 6월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상임위에서 사실상 폐기시켰다. 그것도 여성과 아동의 인권과 권익 보호에 앞장서야 할 여성가족위원회에서다.
김태석 여성가족부차관은 소위에 참석해 "기본적으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이지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년이 된 이후로 공소시효를 계산한다는 법안을 4월에 이미 처리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법무부는 공소시효 폐지에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아이들이 평생 받는 상처는 죽는 것보다 못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에서 공소시효는 배제돼야 한다"며 법안에 찬성 의견을 냈다. 정미경 한나라당 의원은 "살인죄에도 적용되는 공소시효를 성폭력 범죄에만 배제하는 것은 (법적) 형평성에 반할 소지가 있다는 형식적인 검토의견을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영화 도가니로 인해 아동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문제가 공론화되자 국회는 뒤늦게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공소시효 폐지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같은당 박민식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공소시효 폐지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영화 도가니 상영을 추진했다.
정작 법안을 제출했으나 상임위에서 폐기되고, 기존 법안을 보완해 다시 발의한 신낙균 민주당 의원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신 의원은 "일반적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법안은 계류되는 것이 상례인데, 바로 폐기시켰다는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제출한데 이어 (사)어린이재단과 함께 100만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해왔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과 공동으로 사이버 서명운동을 전개한 결과 12일 오전까지 23만6521명이 참여했다. 신 의원은 이날 오후 소설 도가니의 저자 공지영씨와 함께 국회에서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달중 기자 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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