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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현장] 난초와 그림수집에 중독된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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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미술품 컬렉터들이 경험하는 그림과의 첫 인연은 다양하다. 지인이 작가이거나, 자식이 미술을 전공하거나 아니면 그림을 취미삼아 그리면서 미술품을 구입하게 되는 등 경로는 셀 수 없이 많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수집이 마니아 수준까지 이르려면 여유 자금을 확보하는 것 뿐 아니라 미술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든다. 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열정'이 아닐까 싶다. 이런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투자로 혹은 직업을 바꾸는 계기로 삶에 중요한 변환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여행 마니아로 10년간 '한 달간의 아름다운 여행' 시리즈 7권을 펴낸 김종년씨(그림· 남· 68). 그에게 여행만큼이나 '중독'수준이 돼버린 취미도 바로 '그림수집'이다. 미술품 컬렉터로, 여행가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위해 지난 9월 30일 서울 인사동의 어느 화랑을 찾았다. 가깝게 지낸다는 화랑 대표가 제공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인상은 체크무늬 양복을 입은,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중년 신사의 모습이었다.
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그림이 아닌 '난초'였다. 여행과 그림 이전에 그의 취미 1호는 '난초 기르기'였다고 한다. 4년 전 퇴사할 때까지 줄곧 월급쟁이 인생을 걸어온 그에게 여행과 그림을 취미로 삼을 수 있게 한 자금줄이 바로 '난초'라 했다. 그는 1973년부터 지난 2007년까지 동대문 인근에 자리한 한양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었다.

값비싼 난초는 한 분(盆)당 수천, 수억 원에 이른다. 이런 난초를 사는 것은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그에게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는 좋아하는 난초를 직접 길러보기로 하고 '난 기르기' 연구에 돌입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난을 취미로 삼는 것을 그만두기까지 그가 길러낸 것만 500여분에 달한다.

김씨는 "여름철 35~36도에 육박하는 기온에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줘야하는데 새벽에 그 많은 난초들에 물을 주려면 2~3시간이 걸린다"면서 "난초의 가치는 잎 무늬에 따라, 꽃 색깔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데 이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기른 덕에 서초동 난초 경매장 등 '난계'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취미로 삼은 난초재배가 쏠쏠한 재테크가 된 셈이다. 난초 한 분을 제대로 키우기 까지는 3~5년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즐기면서 공들인 대가이기도 했다.
교사신분의 월급쟁이라는 금전적 한계를 난초재배로 극복하며 새롭게 시작한 취미는 바로 '배낭여행'이었다. 1978년 동남아 첫 배낭여행을 떠나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50대 후반부터는 10여 년 동안 본격적인 여행 기고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예술 방면에는 관심도, 소질도 전무했던 그가 처음 그림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의 첫 그림구매는 90년대 초반 동숭동에 위치한 어느 갤러리의 경매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산 그림이 한국화가 남농 허건의 쌍송화 소품으로 160만원에 낙찰 받았다.

김씨는 "동료 교사의 집에서 본 남농의 10폭짜리 노송 병풍이 굉장히 좋아보였고, 그때 처음 남농을 알게 됐다"며 "첫 번째 그림 구입하기 전까지는 그림이라고 하면 한국화만 알고 있었는데 신문을 보고 책을 읽으며 그림에 대해 알아가면서 한 달 뒤에는 서양화가인 박성환 화백의 소달구지 그림을 300만원에 샀다. 그때 경매장에서 우연히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관계자를 만나 인연을 맺으며 인사동에 그림을 보러 다니게 된 게 그림수집과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표현으로, 난초며 여행이며 그림은 모두 '중독'이다. 한 가지에 빠지면 전문가 수준급으로 기어이 무언가 이루고야마는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한 말이다. 김씨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난을 키워 돈을 벌어봤고 5대양 6대주 수많은 곳을 다녀봤으며 이제는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보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난초재배를 그만뒀고 여행은 때때로 진행하고 글을 써가면서 대부분은 그림을 곁에 두고 생활하고 있다. 그는 "난을 기르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까 여행도 다니고 그림도 사들이게 됐는데 나이가 드니까 힘에 부치게 됐다"며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 취미들이 이제는 그림으로 모아지게 됐다"고 한다.

최근 그가 산 작품은 지난 7월 K옥션 여름기획경매에 나온 최쌍중 화백의 '풍경'이란 8호 작품이다. 시작가 200만원에서 그가 320만원에 응찰해 낙찰됐다. 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추상보다는 구상을, 물감이 두툼한 걸 선호하는데 어릴 적 고향마을처럼 느껴지는 그 사람의 화풍을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다.

교사생활을 접고 이제는 칠순을 앞둔 그는 퇴직 직후 수집한 그림을 팔고, 교환하며 용돈벌이를 좀 해볼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일거리로 그림을 사고파는 게 쉽지는 않다. 미술시장이 2007년 정점을 찍고 금융위기를 맞으며 불황을 겪다 아직은 회복기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그는 "일단 '작품'은 작품자체로 봐야겠지만 감상용으로만 접근하면 수업료를 많이 내게 된다"며 "장기 소장과 투자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사고 싶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가치를 인정받는 그림들을 많이 보러 다니며 스스로의 느낌과 안목을 키우는 내공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완전 공개시장인 경매에서 나오는 그림들 역시 진위유무를 의심할 수 있는 것이 때때로 나오기 때문에 그림을 구입할 땐 가급적 보증서나 감정서를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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