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자기학대가 식사거부와 수면거부 등으로 이어지고 교도소안의 작은 수렁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이런 재소자들이 행여 '사고'를 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첨단 시설은 교도소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도관들은 개인카드를 찍고 개인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쇠창살 문이 열립니다. 그 내용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TRS'라는 구형 휴대폰 생김새의 무전기를 갖고 있어 교도소 내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재소자뿐만 아니라 교도관의 일거수일투족도 시간대별로 감시되고 있는 셈입니다. 신입 교도관으로 행세한 기자도 각 동을 방문할 때마다 모든 기록이 중앙통제실로 전달됐습니다.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영치금을 가장 많이 가진 자가 왕이었습니다.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영치금을 가지고 있는 자도 있었습니다. 1000원짜리 과자부터 훈제 닭까지 먹을거리를 사자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설거지가 하기 싫은 재소자는 훈제 닭은 시켜주곤 싫은 일을 떠밀기도 합니다. 신참 교도관이 순찰을 돌 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담당, 제 영치금 잔고 좀 알아봐주세요."였을 정도입니다.
경찰에 붙잡힌 A는 '이제 사형 아니면 무기형이구나'고 생각하면서 재판을 기다렸지만 못된 꾀는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좀 더 편한 요양병동에 가고 싶어 요도에 샤프심을 박아 넣는가 하면 탄원서 내기를 반복해 결국 2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안양교도소로 이감되면서 이렇게 외쳤답니다. "교도관들아, 20년 후 다시 봅시다. 그 때는 형을 죽이고 다시 들어올테니"
만 24시간이 지난 19일 아침 9시. 함께 선 교도관들에게 한마디 해보라는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교도관들이 이렇게 고생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더니 하루만에 친숙해진 한 교도관이 농담섞인 어투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하룻밤 자고 교도소 생활을 어떻게 알겠어.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신문사로 들어와 부장이 사준 첫 식사가 궁금하십니까? '순두부' 백반이었습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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