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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의 건축외전③]기능에서 일상의 아름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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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양 승 열(楊 昇 烈). 울산에서 성장하며 조그만 공단도시가 인구 100만 명의 광역시가 되는 과정을 보고 자랐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도심활성화를 주제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소속으로 용산역세권개발 설계단에서 일하고 있다. "문명은 3가지 요소로 이뤄졌다. 진 truth 선 goodness 미 beauty 이는 곧, 과학 science 윤리 ethics 예술 art 이다. 이 모든 것은 일상 언어다"라는 말을 기억해 내고는 일상 언어로서의 건축에 관심을 두고 있다.


뮌헨의 지하철 정거장(Westfriedhof station), 아우어+웨버(Auer+Weber), 지하철이 들어오는 알림판과 시계 정도의 시설물이 있는 간결한 디자인이다.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조명 설계로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뮌헨의 지하철 정거장(Westfriedhof station), 아우어+웨버(Auer+Weber), 지하철이 들어오는 알림판과 시계 정도의 시설물이 있는 간결한 디자인이다.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조명 설계로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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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지와 경유지

어떠한 도시를 방문하기 전, 그곳에 대해 상상을 하는 것으로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파리에서는 그림을 봐야 하고, 빈에서는 커피와 함께 음악을 들어야 하며, 홍콩에서는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야경을 즐겨야 한다. 때로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피렌체 두오모(duomo, 대성당을 의미)의 계단을 오르고,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를 기억하며 잘츠부르크를 상상할 수도 있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여행지의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며, 이런 도시를 여행하고 나면 그곳에 대한 추억이 남기 마련이다.

이렇듯 도시가 명화와 명인, 명소로 기억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여행 에세이처럼 플러그소켓, 욕실의 수도꼭지, 잼을 담는 병 등의 소소한 소품이나 낯선 공항의 이국적인 안내판으로도 기억될 수 있다. 난처하게 만드는 3구 소켓이나 조금은 다른 생활용품,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글자로 된 안내판은 내가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기분이 들게 할 것이고, 나아가 낯선 곳의 건축 수준으로 그 나라의 공간에 대한 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이 가진 역사적 장소가 여행자들이 찾는 목적지라면, 그곳을 찾아가기 위한 지하철역은 경유지라고 할 수 있다. 간혹, 경유지에서 뜻밖의 기분 좋은 공간을 발견하는 경험은 여행의 재밋거리이자 추억이다.
사람들과 교감하는 장소

1986년에 개통된 지하철 3호선의 경복궁역은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곳이다. 경복궁이라는 국가문화재와 그 주변의 문화시설을 고려하여 애초에 전시를 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세월에 변함없는 화강석과 아치형 천장으로 구성되어 웅장한 미를 나타내고 있다. 당시 특정 계층의 취미로 받아들여졌던 미술관 관람을 대중화하려는 시도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완공된 지 20년이 넘은 경복궁역은 새로 개설된 지하철역보다 친숙하며, 전시 장소로 활용될 수 있어 여전히 사람들과의 교감(交感)을 유도하고 있다. 잘 기획되고 잘 만들어진 기반시설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복궁역, 김수근, 공간건축, 역사 안에 ‘서울메트로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1985년에 우수 건축물로 선정되어, 한국 건축가 협회상을 받았다.

경복궁역, 김수근, 공간건축, 역사 안에 ‘서울메트로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1985년에 우수 건축물로 선정되어, 한국 건축가 협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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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의 교감은 생활주변에서 친숙히 다가오는 장소와 삶이 이어지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더욱 진실에 가까운 도시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도시를 단편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 외에도 거리와 시장에서, 버스와 지하철에서 여행자는 그 도시를 읽어내는 것이다. 도시가 텍스트(text)처럼 읽혀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하는 것인가? 우리생활의 일부가 된 지하철역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도시의 새로운 상징, 지하철역

지하철은 세계 유수의 대도시에서 교통체증을 방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지하공간을 활용하여 정확한 시간에 장소를 이동할 수 있어, 노선망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스톡홀름, 뮌헨, 모스크바 등의 지하철역은 공공에게 좋은 장소가 되고자 노력한 모습이 돋보인다.

스톡홀름의 지하철역은 그 자체가 도시를 상징할 수 있을 만큼 일괄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도시의 100여개 정거장에 동굴이나 바위산이 연상되는 모양을 연출하였으며, 그 벽면에 아름다운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었다. 약 140여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이 공공시설은 스웨덴의 예술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노선(路線)을 상징하는 색을 사용하여 내가 어느 노선의 역에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으며, 일부 벽면은 지하에 있던 자연석을 그대로 노출하였다.

스톡홀름의 지하철 정거장(T-centralen station), 펄 올로프 울트베드(Per Olof Ultvedt), 벽면과 천장에 표현된 문양으로 스웨덴 특유의 디자인을 표현하였다. 파란색을 사용하여 이 역이 블루라인(blue line) 노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톡홀름의 지하철 정거장(T-centralen station), 펄 올로프 울트베드(Per Olof Ultvedt), 벽면과 천장에 표현된 문양으로 스웨덴 특유의 디자인을 표현하였다. 파란색을 사용하여 이 역이 블루라인(blue line) 노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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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시작된 뮌헨의 지하철은 독일인 특유의 실용성과 효율성을 갖추었다. 콘크리트 구조체로 단순한 공간을 만들고, 잉고 마우러(Ingo Maurer)에 의해 고안된 조명기구로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법당의 닫집(불상 위에 매달려있는 집 모양의 공간)처럼 천장에서 내려오는 아주 큰 조명이 공간을 점유하며, 그 아래로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고 있다.

뮌헨의 지하철 정거장(Westfriedhof station), 아우어+웨버(Auer+Weber), 지하철만 보이지 않으면 정거장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뮌헨의 지하철 정거장(Westfriedhof station), 아우어+웨버(Auer+Weber), 지하철만 보이지 않으면 정거장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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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큰 샹들리에가 달려 있는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그 역사만큼이나 고전적인 미를 보여준다. 아치(arch)를 형성하며 줄지어 늘어선 기둥위에 화사한 파스텔 톤의 천장을 얹었다. 상아빛 장식과 그 안에 있는 천장화(天障畵)는 지하철역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고혹적이다. 옛 러시아의 영광이 남아있는 듯하다.

모스크바의 지하철 정거장(Komsomolskaya station), 1930년대에 지어진 정거장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 정거장(Komsomolskaya station), 1930년대에 지어진 정거장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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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에 급속히 성장한 상하이는 정거장이 아닌 터널에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황푸강(黃浦江)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와이탄’과 ‘푸동’을 연결하는 터널은 이름하여 ‘관광터널’이라 부른다.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의 짧은 경험이겠지만, 상하이의 성장을 상징하는 ‘푸동지구’로 들어가는 특별한 방법일 것이다.

상해의 관광터널(The Bund Sightseeing Tunnel), 지하철 정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터널 안의 조명 쇼를 만끽할 수 있다.

상해의 관광터널(The Bund Sightseeing Tunnel), 지하철 정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터널 안의 조명 쇼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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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에서 일상의 아름다움으로

어떠한 도시라도 그 곳에는 시간이 축적된 역사와 문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색다른 역사와 문화를 교감하기위해 여행자들은 찾아온다. 찾아온 여행자는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나라의 문화와 의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도시의 지하철역은 정말 특별한 공간이군!”

비단 여행자뿐만 아니라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공간을 갈망한다. 아름다운 곳을 만나면 그곳에 머물고, 기억하고, 향유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내가 소유하지 않더라도 삶 속에서 좋은 공간을 매일 같이 마주칠 수 있다면 큰 행복일 것이다.

지하철은 도로, 항만, 발전소 등의 기간시설과 함께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 인프라(infrastructure)이다. 함께 사용한다는 공공성과 자주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인해 지하철역은 무수한 교감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시민에게 빈번하게 노출되며 매일 접하게 되는 일상적인 공간인 것이다. 빠르고 안전한 운행은 지하철의 생명이겠지만, 기능을 넘어선 아름다운 지하철 공간은 그 도시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서울에는 수많은 지하철역이 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게 되는 지하철역은 대부분 붐비고, 짜증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것 또한 그 도시를 인지할 수 있는 불명예스러운 하나의 텍스트이지만, 도시와 교감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기능적인 공간으로만 생각되는 지하철 공간을 도시민이 교감할 수 있는 공공의 아름다운 건축으로 만드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해외 지하철역 : http://www.flickr.com
경복궁역 :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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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painter_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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