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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종묘 할아버지, 복지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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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노인은 걸음걸이도 예쁘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곧 못사는 나라 노인은 볼품이 없다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못 사는 나라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 이 말을 듣고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일까요. 저만 그런 것일까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머릿속에 있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 듯합니다. 여러분은 ‘노인’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노인하면 ‘종묘 노인’이 떠오릅니다. 그들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의 그늘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종묘 노인’은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노인일까요.

얼마 전 중국에서 온 교포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 활동적이고 젊은 할머니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60세만 넘으면 대부분의 노인들이 무력하게 사는데 한국은 거리에서도, 지하철을 타도 활기찬 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모습을 보고 잘 사는 나라 노인들은 활동적으로 살고 그렇게 활동적으로 살다보니 오래 산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족 아주머니 얘기는 제가 18년 전 일본에 가서 보고 느꼈던 생각과 너무도 흡사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노인의 걸음도 꽤 예쁘게 보이는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만 노인들의 변화를 제대로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며칠 전 지난해 문을 연 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공원을 끼고 있고 아파트 단지가 있는 최적의 입지 공간이었습니다. 복지관 입구에서는 할머니 두 분이 환한 얼굴로 안내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들이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이 깃들여 있었습니다. 복지관을 둘러보니 당구를 치고 있는 분들, 오픈된 도서 공간에서 책을 읽는 분들, TV를 시청하시는 분들, 바둑을 두고 계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고부 갈등을 주제로 한 연극공연 준비로 한창입니다. 며느리 역할을 맡은 할머님의 대사를 들으니 이 땅에 고부갈등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대학도 이곳 만큼 활력이 넘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실에는 60명 정도 되는 노인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습니다. '뭘 더 배울 게 있을까?' 싶은 나이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배움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학생의 90% 정도가 할머니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할아버지들은 다 어디 계신 걸까요? 몇 분 안 되는 남자 어르신들은 표정마저 밝지 않습니다.

노인의 걸음걸이가 예뻐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볍고, 오라는 곳이 있으니 발걸음이 신나는 것이지요. 노인종합복지관 노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선진국 노인들을 만났습니다. 배려 깊고, 따스하고, 친절해서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단지 아쉬운 건 할머니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여성교육의 역사는 깁니다. TV 아침 프로를 통해서도 여성들은 간접적인 학습을 계속해 왔습니다. 할머니들의 경쟁력은 이를 통해 형성된 것은 아닐까요. 반면 남성들은 사회 진출 이후 일에만 몰두할 뿐 사회변화를 학습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종묘노인들의 걸음걸이가 예뻐지게 하는 방법 무엇일까요? 남성학, 아버지 학교, 남성부가 생겨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리봄디자이너 조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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