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야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아시아 영화 최대 축제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1회가 시작되던 1996년만 해도 이런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던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반 대중뿐 아니라 영화계 안팎의 관계자들도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 일쑤였습니다. 사정은 이랬습니다. 한국 영화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이지만 1960년대 이후 수도권 집중 현상의 심화로 부산은 영상 인프라가 전무했습니다. 게다가 20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영화제의 헤게모니는 정부의 든든한 자금 지원을 받는 도쿄국제영화제와 홍콩국제영화제가 양분한 상태로, 더 이상은 파고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1회 영화제가 열릴 9월 13일부터 21일까지의 기간은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북미의 신흥 강자로 올라서던 토론토국제영화제 기간과 교묘히 오버랩 됐습니다. 누가 봐도 승산 제로의 게임임에 분명했습니다.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의 낡은 극장들을 빌려 31개국 169편의 영화를 상영하던 ‘소박한’ 규모로 문을 연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70개국 307편의 영화 상영 규모의 ‘매머드’급으로 올라섰습니다. 영화제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세계 최초 개봉작인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는 무려 135편이나 됩니다. 경제적 가치도 상당합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제적 가치가 자동차 5000대 수출하는 것 혹은 26개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것에 육박한다는 통계를 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하면 된다’는 식의 뚝심과 빈 구석을 잘 치고 들어간 ‘똑똑한’ 기획력이 일궈낸 놀라운 결과물일겁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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