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징크스'가 무엇이기에 이 전 대통령이 당시 이처럼 경계했을까. 3년차는 5년 단임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도는 해다. 과거 역대 정부가 이 시기에 공직 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지면서 권력형 비리가 터지거나 계파 및 당청 갈등, 인사 실패 등이 불거지면서 권력 누수 현상이 급속히 진행됐다. 유독 대형 사고도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 공직 사회를 다잡고자 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역시 3년차인 2000년에 일이 많았다. 6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는 듯했다. 그러나 벤처붐에 편승한 '정현준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 등 하반기에 잇달아 터진 권력형 비리에 발목이 잡혔다.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3년차인 2005년 러시아 유전 개발 '오일 게이트'와 '행담도 게이트' 등 측근들의 잇단 비리 연루 의혹으로 국정 추동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공직 기강을 다잡으려 했던 이명박 정부도 징크스를 피해가진 못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으로 이 전 대통령과 동향 출신인 '영포(경북 영일ㆍ포항) 라인'의 월권행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왕차관' 논란이 겹치면서 국민 불신은 깊어만 갔다.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간 갈등은 세종시 수정안의 부결로 절정에 달했다. 이 전 대통령의 국정 동력이 급격히 약화했음은 물론이다.
사정이 이러니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는 건 당연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1월 둘째 주 박 대통령 지지율은 35%다. 전 주보다 5%포인트 감소했다. 취임 이후 최저치다. 부정적인 평가가 절반이 넘는 55%다.
12일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건 파동을 '몇 사람의 사심에서 비롯된 허위'로 치부하고,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교체를 일축한 데 여론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소통을 위한 기자회견이 오히려 불통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국민의 요구를 한 귀로 흘려듣고 독선과 아집으로 국정을 운영해서야 개혁은 고사하고 3년차 징크스를 피해가기 어렵지 싶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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