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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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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6월까지 남ㆍ북ㆍ미ㆍ중 4개국은 잇따라 정상회담을 열며 숨 가쁘게 돌아갔다. 전 세계인들은 동북아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화의 기운으로 급속히 넘어간다며 안도했다. 그런데 7월에 들어 이런 평화 무드가 폭염으로 더위를 먹었는지, 그 속도가 느려져 실망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약속대로 북한이 비핵화 프로그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미국과 종전선언을 먼저 하자는 북한 사이의 줄다리기도 관심거리가 됐다. 속된 말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논쟁이다. 북한의 주장은 지금이 정전상태일 뿐이지 종전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 전쟁 행위가 잠시 정지됐을 뿐 피차 무기를 겨눈 상태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먼저 적대 행위를 끝낸다는 약속(선언)부터 하자는 것이고, 미국은 무기부터 내려놓고 대화를 해야 확실하게 전쟁을 끝내게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하고 있다.
미국은 서둘러 비핵화 프로그램을 얻고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까지 보냈다. 하지만 북한은 종전선언부터 하는 게 순서라며 퇴짜를 놓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빈손으로 돌아서는 등 뒤로 북한 언론은 "깡패 같은 요구를 했다"고 비난까지 했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를 미워하는 미국의 언론 매체들, 그의 행동을 곱든 싫든 일단 비판부터 하는 이성을 잃은 미국 매체들은 일제히 트럼프와 북한을 싸잡아 공격했다. 자칫하면 미국의 국내 여론 때문에 모처럼 이뤄진 평화 무드가 깨질 판이다.

그동안 한반도의 비핵화 운전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온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나서야 할 형국이 됐다. 정전협정이 서명된 7월27일은 기대와 달리 유해송환만 됐을 뿐 조용히 지나갔다. 아직도 설 익은 상황이다.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김 위원장이 직접 미국에 가서 종전선언을 하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작업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게 적당하다.
지난 4월 판문점 회담에서 채택된 합의문에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돼 있다. 그러므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분리하는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종전선언부터 하고 북측에 비핵화 프로그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게 순서상 맞을 것이다. 비핵화 프로세스는 기술적으로 일시에 해결하기 어렵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각 나라의 내부 사정이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는 승기를 잡기 위해 비핵화 문제를 서두르고 있다. 무엇인가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할 터인데 앙앙불락(怏怏不樂)이다.

독재 국가인 북한도 내부적으로 핵무장만을 위해 일로매진해온 터라 군부를 달래야 한다. 그러자면 '핵무장과 경제' 병진정책에서 핵무장을 내려놓도록 납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체제 보장이 필요하고 그게 종전선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군부 강경파들도 경제발전 쪽으로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능숙한 비핵화 운전자로서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그 덕분에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은 만만치 않다. 무엇인가 돌파구가 없으면 헤쳐나가기 어렵게 됐다. 그동안 소득주도 경제정책, 최저임금, 탈원전, 노동시간 단축, 적폐청산 등 숨 가쁘게 많은 일들을 벌여 놓았는데 이제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정리하고 마무리짓는 단계에 이르렀다. 개혁은 마무리 단계가 가장 어렵다. 거친 반대의 목소리가 이때를 틈타 일어나기 때문이다. 벌써 개각 소문이 언론을 타고 일어나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말해준다.

이처럼 한반도 비핵화라는 작품을 만들어가야 하는 각국의 주체들이 대내외의 늪에 빠져있다. 이를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나서 정상회담에서 약속된 것 그대로 이행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려면 각 주체들에 특단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비핵화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쌍무 간, 다자 간 여러 형태의 대화가 이뤄졌지만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정상들이 직접 나서서 합의한 예는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톱다운 방식을 아직도 낙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다시 한번 굿뉴스를 전해주기를 고대한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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