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 두 푼 모아서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특히 서울에서의 삶은 그렇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돈이 필요한 재화는 집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큰 만족을 줄 수도 있다. 지난달 서울의 평균 집값은 6억273만원. 2008년 관련 통계가 공개된 이후 처음으로 6억원대에 기어코 올라섰다. 아파트값 평균은 7억원을 넘겼다.
PIR(Price to income ratio)은 평균적인 소득을 모아서 평균 가격의 집을 사는데 걸리는 시간 통계다. 서울에서는 11.5년이 걸린다. 소득을 모두 모은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절반씩 모은다고 해도 23년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축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는 이들이 많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같은 건 언감생심이다. 허공에 떠 있는 20~30평짜리 공간을 갖는 것조차 이제 꿈 같은 일이 됐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만든 덫에 스스로 걸려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다. 치솟는 아파트값과 사교육비의 금자탑 뒤에서 미소 짓는 몇몇을 제외하고 모두 피해자로 만드는 시대가 아닌가. 삼성증권의 배당 오류로 막대한 주식을 받게 된 직원들 중 일부가 곧바로 주식을 팔아치워 논란이 뜨겁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작용한 것일까. 역시 우리가 짜놓은 함정이 위력을 보여준 것인가.
제논의 역설이 떠오른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도 거북이보다 늦게 출발했다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그 순간에 거북이가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 사유를 위한 비유일 따름이지만 여러 모로 생각해볼만 하다. 패러다임, 판을 바꾸지 않고서야 목적지에 닿기는 요원한 일이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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