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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의 배신]통상분쟁 된 녹두…페루 부통령, 한 총리에 “문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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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문제로 비화하는 페루산 녹두 사태
페루농민들, "한국에 대응하라" 항의서한
비슷한 사태 반복되면 韓 신뢰 추락 우려
"관세행정이 FTA 본래 취지 퇴색" 분석도
'원산지 사전검증' 활성화로 분쟁 예방해야

지난해 11월 18일 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부통령이 한-페루 간 양자회담 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지난해 11월 18일 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부통령이 한-페루 간 양자회담 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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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의 원산지 조사로 시작된 페루산 녹두사태가 국가 간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한국 세관의 거친 조사로 현지 감정이 악화한데다, 수익이 줄어든 페루 기업과 농민들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들을 대변하는 페루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부통령까지 나서 한덕수 국무총리에 사태를 매듭지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아시아경제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디나 볼루아르테 당시 페루 부통령은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 사이에서 발생한 녹두 사태의 해결을 요구했다. 볼루아르테 부통령은 한국에서 페루산 녹두가 통관보류된 사실과 한국세관의 원산지 조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달 뒤 볼루아르테 부통령은 대통령직에 올랐고, 올 1월 세관당국은 통관보류 조치를 해제했다.

현재 관세청은 생산량 급증을 이유로 수입기업이 들여온 페루산 녹두의 원산지에 대해 고강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페루산 녹두는 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들여왔는데, 관세청은 원산지 입증을 못 했다고 판단한 수입기업에 원래 관세(607.5%)를 내라고 통보했다. 기업들은 관세청이 요구한 자료 수준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자료 증빙에 실패하면 기업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세관은 어떻게 수입기업을 무너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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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유력 정치인까지 녹두사태 해결을 위해 움직인 건 현지의 정치지형과 관련이 깊다. 페루는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할 정도로 농민 비율이 높다. 그만큼 농민들이 결성한 농업협회의 정치적 영향력도 강력하다. 한국세관의 페루산 녹두 원산지 조사로 농민들이 손해를 보자 협회에서는 페루 정부에 수차례 문제를 해결하라며 항의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한국 세관의 조사로 자국민들이 피해를 보았으니 적극 대응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한국 수입기업도 페루 정부에 강력히 대응해달라는 진정을 넣고 있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국내 기업이지만 페루 정부에 무역보복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한 수입기업 관계자는 “한국의 수출기업들을 깐깐히 조사해달라고 페루 정부에 요청하는 한국기업도 있다”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으니 차라리 페루가 상호주의에 따라 한국의 수출품을 제재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韓 신뢰 추락 우려…'사전검증' 활성화해야

문제는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수록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FTA로 자유로운 무역을 기대했지만 한국의 비관세장벽이 매우 강력하다는 시그널이 퍼졌기 때문이다. 페루 정부는 자국산 녹두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국가차원에서 보증했음에도 세관의 원산지 조사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불만과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관계자는 “페루 정부는 한국에 수출하는 망고도 걱정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잣대로 원산지 증명을 요구하면 페루산 망고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페루 현지에서 자라고 있는 파종용 녹두들. 사진=제보자 제공

페루 현지에서 자라고 있는 파종용 녹두들. 사진=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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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분쟁이 잦아지면 각종 사회적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은미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관세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에서 “관세청이 원산지를 검증하는 법 해석은 경직적이어서 많은 기업이 추징당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원산지를 인정받지 못하면 징벌적 성격의 가산세와 벌금을 함께 납부해야 해 수입자에게 상당한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수입자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과세관청에는 행정적 부담을,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이미지 실추라는 부담을 야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FTA 제도와 관세청의 행정이 자유무역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안태건 부경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은 FTA를 통해 관세장벽을 철폐했지만 원산지 규정이 새 무역장벽이 되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면서 “복잡한 원산지 규정은 세관당국과 수출입기업 간 많은 분쟁을 야기해 FTA 활용의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원산지 검증 진행 방식. 사진=관세청

원산지 검증 진행 방식. 사진=관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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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으로는 원산지 사전검증제도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수입기업에 사후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정부가 사전에 원산지를 검증해 분쟁을 줄이자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관세국경보호청이 자국에 수입되는 물건에 대해 기업들이 미리 심사받을 수 있는 제도를 운용 중이다. 기업이 아닌 세관이 물품의 원산지를 확인하고 해당 결정은 미 정부가 3년간 보장한다. 호주는 행정청의 이행지침에 따라 사전검증제도를 운용하는데 정부가 5년간 원산지를 보증한다. 영국도 원산지결정의 해석이 어려우면 정부가 직접 사전검증을 해준다.


한국의 사전심사제도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세청 소속 백혜영 변호사는 지난해 개인 논문에서 “FTA 원산지 사전심사는 수·출입업체에 유리한 제도임에도 크게 활용되지 못했다”며 “제도 활용도를 높이려면 규정 개선 역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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