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르포]가출 청소년 꿈 기지개 켜는 '청소년쉼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망우청소년단기쉼터/사진제공=여성가족부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망우청소년단기쉼터/사진제공=여성가족부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드르륵 드르륵"

지난 23일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망우청소년단기쉼터 주변으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곳에서는 여자 청소년 5명이 모여 각자 잠옷, 쿠션 등을 만들고 있었다. 강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는 아이들부터 입을 굳게 다문 채 열중하는 아이들까지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이들은 모두 가출청소년이다.
1992년 10월 28일 우리나라에 최초로 설치되기 시작한 청소년 쉼터는 만 14~24세의 가출·위기 청소년에게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과 자립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실시한다. 현재 전국에 총 123개소의 청소년 쉼터가 설치돼 있다.

청소년들이 가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출 원인으로 부모님 등 가족과의 갈등(74.8%)이 주를 이루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8.0%), 공부에 대한 부담감(6.1%)이 뒤를 잇는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던 중 '집에서 나가라'라는 말을 듣고 홧김에 가출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쉼터를 찾는 이유는 보다 명확하다. 가출 기간이 길어지면 돈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A양(17)은 "쉼터에서는 보호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잘 수 있다"라며 "더 이상 돈이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지 않아서 좋다"라고 쉼터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쉼터는 청소년들에게 주거공간과 식사를 제공하는 외에 한 달 3만원의 교통비와 한 주 1만5000원 정도의 용돈을 지급한다. 일정한 거처가 생겨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수월해진다. 편의점, 핸드폰 대리점, 전단지 배포가 보편적인 일거리다.

건강 문제도 청소년들이 쉼터의 문을 두드리는 주요 이유다. 위생 조건이 열악한 외부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치과 질환을 비롯해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김병록 쉼터 소장은 "미용목적을 제외하면 무료로 병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쉼터는 가출 청소년들의 심리치료에서부터 직업교육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바리스타' 프로그램의 인기가 가장 높다. 쉼터는 외부 바리스타를 초빙해 아이들에게 커피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단기쉼터의 목적인 만큼 직업교육이 구체적이지는 못하다. 이러한 역할은 중장기 쉼터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 중랑구 망우청소년단기쉼터에 비치된 바리스타 프로그램 기구/사진=정준영 기자

서울 중랑구 망우청소년단기쉼터에 비치된 바리스타 프로그램 기구/사진=정준영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가출 청소년들과 쉼터 직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타인의 시선이다. 쉼터는 원래 명칭인 '망우청소년단기쉼터'대신 '기지개 꿈터'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달았다. 동네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주민 중 일부는 "소년원에서 퇴소한 아이들이 오는 곳"이라며 악의적인 거짓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지금은 처음보다는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쉼터의 바리스타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한 아이들이 지역사회에 나가 봉사활동도 하고 주민들과 스포츠 교류도 하면서다. 직원들도 쉼터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홍보를 비롯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차별의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태희(18·가명)는 "아침에 등교하면서 시설을 나설 때 느껴지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다"고 말했다. A양은 "대놓고는 뭐라 하지 않지만 지하철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며 "쉼터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곳이고 잘못된 것이 아닌데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쉼터가 더 늘어나고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현(22·가명)양은 "국가가 홍보를 잘 해서 다른 가출 청소년들도 쉼터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아(16·가명)양은 "가수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며 "쉼터에 머물면서 차근차근 꿈을 이뤄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