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장인서의 On Stage]레일 위 폭주하듯 베일 속 진실찾기, 카리스마 넘쳤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맨덜리 주택의 주인 막심과 사랑에 빠진 '나'
죽은 전 부인 레베카에 집착하는 집사와 마찰
스릴·질투로 얽힌 비극 내달 18일까지 공연


뮤지컬 '레베카' 공연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레베카' 공연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사방이 검고 음산한 맨덜리 대저택 안.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절규하듯 레베카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죽은 이의 부재에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 여인은 집사 댄버스 부인이다. 사고로 죽은 전 부인 레베카의 그림자를 안고 사는 영국 귀족 막심과 레베카를 숭배하는 그녀는 맨덜리 저택을 처절한 광기로 서서히 물들인다. 매혹과 스릴, 집착과 질투로 가득 찬 비극, 뮤지컬 '레베카' 이야기다.
저택의 주인 막심과 그와 사랑에 빠진 '나(I)', 레베카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댄버스 부인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을 짓는 그는 레베카를 대신해 저택의 새 안주인으로 들어온 '나'를 경계한다.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솔직한 인물인 '나'가 막심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댄버스 부인과 맞서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예측불허의 긴장감 속에서 보여준다.

레베카가 등장하지 않는 무대는 온통 레베카로 채워진다. 등장인물은 모두가 마치 환영으로 그녀를 보기라도 하듯 레베카에 사로잡혀 있다. 댄버스 부인은 누구보다 열렬히 레베카를 끊임없이 되뇌며 어두운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관객은 댄버스 부인이 휘두르는 이 열정의 정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숭배에 가까운 제스처 아래에 망상과 집착, 동경, 혼돈이 얽히고설켜 있다.

베일에 가린 듯 잔잔하게 배어나오는 슬픔에서는 정작 자기 인생을 잃어버린 한 인간의 처연함을 볼 수 있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집착에 빠진 한 인간이 주변을 조종하고 결국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과정은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 '화차(火車)'를 떠올리게 한다. 한 개인의 악(惡)이라기보다 인간 내면의 결핍과 욕망이 낳은 비극을 우수에 찬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스산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와 감미로운 노래는 드라마를 이끄는 또 다른 견인차다.
뮤지컬 '레베카' 공연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레베카' 공연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원본보기 아이콘

댄버스 부인과 '나'가 풍랑이 휘몰아치는 바다가 보이는 저택 발코니에 서서 부르는 '저 바다로 뛰어!'는 과거와 현재, 광기와 순수, 집착과 사랑으로 대변되는 인물 사이의 갈등을 폭발시킨다.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라는 댄버스 부인의 외침은 절규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힘의 주도권이 바뀌면서 1막과 2막의 분위기도 확 바뀐다.

막심이 사랑한 한 사람이 자신임을 알게 된 '나'는 변화한다. 댄버스 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레베카를 생각나게 하는 모든 물건들을 치우고, 맨덜리의 주인으로서 저택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더 강인한 인물로 변한 '나'는 댄버스 부인을 몰락으로 이끈다. 극의 마지막, 모든 의혹이 풀리고 사건이 해결되자 막심과 '나'는 다가올 행복에 들떠 있다. 하지만 이때 맨덜리 저택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이고, 그 화염 속에 댄버스 부인의 실루엣이 보인다. 자기만의 인생을 갖지 못한 댄버스 부인의 삶이 잿빛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순간이다.

뮤지컬 레베카는 2013년 1월 초연된 뒤 이번이 네 번째 공연이다. '엘리자벳'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의 뮤지컬로 국내 관객에게 잘 알려진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작품이다. 1938년 출간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과 1940년 개봉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토대로 제작됐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한 이후 일본, 러시아, 헝가리, 독일, 스위스 등에서 공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틱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아름다운 음악 등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뮤지컬 '레베카' 공연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레베카' 공연 모습.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원본보기 아이콘

댄버스 부인 역으로 초연 때부터 활약한 신영숙과 옥주현을 비롯해 18년 차 뮤지컬 배우 김선영이 새롭게 합류했다. 김선영은 '잃어버린 얼굴 1895' '위키드' '미스 사이공' '지킬 앤 하이드' '에비타'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며 여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실력파 배우다. 김선영은 댄버스 부인 역에 대해 "레베카의 욕망과 야망, 열정을 같이 공유하면서 느낀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을 쫓았다"면서 "어느 순간 나와 분신처럼 느껴진 레베카가 사라진 것도 인정할 수 없고 그런 광기로 질주하게 되는 여정들을 되짚었다"고 설명했다.

막심 역은 민영기, 정성화, 엄기준, 송창의가 맡는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막심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나' 역에는 김금나, 이지혜, 루나가 출연한다. 공연시간은 170분, 11월18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한다.

◆원작소설 '레베카'와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
영국 출신 소설가 겸 극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는 파리로 가서 1928년부터 단편과 산문을 쓰기 시작했고 1931년에 첫 장편소설 '사랑하는 마음'을 출간했다. 이후 1938년 '레베카' 초판을 발표하면서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 대표작으로 '줄리어스' '자메이카 여인숙' '사촌 레이첼' '새' 등이 있다. 그의 베스트셀러작 가운데 레베카, 새, '프렌치맨스 크리크' 등 여러 작품이 영화로 제작됐고, 1977년에는 미국 미스터리 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마스터상을 수상했다. 소설 레베카는 로맨스 스릴러에 동화적 요소가 가미된 작법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품이다. 소설 속 화자인 '나(I)'는 상류사회의 부유하고 미스터리한 남자 막심을 만나 결혼하지만 그녀가 안주인으로 입성한 맨덜리의 대저택은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 뒤에 어두운 비밀을 감추고 있다.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인물들의 파멸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한다. 스릴러의 거장이라 불리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1899~1980)은 몇 년간 판권을 얻기 위해 노력한 끝에 1940년에 영화화했고,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77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스릴러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건강보험 의료수가 인상분 반영 '약값 상승' [힙플힙템] 입지 않고 메는 ‘패딩백’…11만개 판 그녀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 굳건한 1위 뉴진스…유튜브 주간차트 정상

    #국내이슈

  • 마라도나 '신의손'이 만든 월드컵 트로피 경매에 나와…수십억에 팔릴 듯 100m트랙이 런웨이도 아닌데…화장·옷 때문에 난리난 중국 국대女 "제발 공짜로 가져가라" 호소에도 25년째 빈 별장…주인 누구길래

    #해외이슈

  • [포토] 꽃처럼 찬란한 어르신 '감사해孝' 1000개 메시지 모아…뉴욕 맨해튼에 거대 한글벽 세운다 [포토] '다시 일상으로'

    #포토PICK

  • 3년만에 새단장…GV70 부분변경 출시 캐딜락 첫 전기차 '리릭' 23일 사전 계약 개시 기아 소형 전기차 EV3, 티저 이미지 공개

    #CAR라이프

  • 앞 유리에 '찰싹' 강제 제거 불가능한 불법주차 단속장치 도입될까 [뉴스속 용어]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 용어]'네오탐'이 장 건강 해친다?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