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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재발견]질투하는 남과 여…'질투의 역사는 남자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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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열등감+콤플렉스 뒤엉킨 인간 본성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질투심 강해
사회적 분위기·문화 탓에 표출 억누를 뿐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이성(異姓) 사이 질투 새로운 풍경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 1.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가 기르던 강아지 이름은 '헤겔'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기분이 언짢은 날이면 헤겔에게 욕을 퍼붓고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은 선배, 헤겔을 시기 질투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던 쇼펜하우어는 평생토록 헤겔을 미워하다 세상을 등졌다. 둘이 함께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의 일화는 유명하다. 쇼펜하우어는 수강생을 놓고 헤겔에 정면 도전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제 잘난 맛에 빠져 인기가 없었던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은 텅텅 빈 반면 헤겔 곁에는 따르는 사람이 늘 많았다. 처음에는 사소한 질투였지만 증오심이 더해지면서 쇼펜하우어는 결국 온 세상에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 2. "모차르트, 그 젊은 자는 내가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음악에 놀이처럼 가볍게 접근한다. 나는 음악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버릴 각오가 돼 있는데 그는 놀 것 다 놀고 여자와 농탕칠 것 다 치고 경박하게 '하하하' 웃어가며 남는 시간에 작곡을 한다. 그런데도 그의 음악은 시공을 뛰어넘는 불후의 명작이고 내가 쓴 곡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중략) 세상은 어쩌면 이다지도 불공평하단 말이냐!" 영화 '아마데우스(1984)'는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평생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끝내 모차르트를 독살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2인자의 심리 상태를 이르는 용어로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말이 생겼다.

흔히 질투는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질투심이 강하다. 쇼펜하우어처럼 항상 누군가를 향한 질투심을 안고 사는 남자를 주위에서 찾는 건 현대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다. 질투는 성(姓)에 따른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속해 있는,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뒤엉킨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남자의 경우 질투 본능을 억누르는 사회적 기제가 보다 발달돼 있다. 남녀가 모두 질투를 한다지만 질투심이 어떻게 발현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남녀의 질투는 엄연히 다르며 질투에도 감정이 있고 질투마다 제 각각의 얼굴이 있다.

남자의 질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는 여자보다 강해야 한다는 통념이 널리 깔려 있어선지 남자는 좀처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질투를 느끼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남자의 질투가 여자보다 그 강도가 약해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남자의 시기와 질투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때론 나라를 망하게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오페라 카르멘 등 남자의 질투를 소재로 한 작품에는 남성이 가진 폭력적이고 비극적 질투가 그대로 드러난다.
[질투의 재발견]질투하는 남과 여…'질투의 역사는 남자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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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질투는 1차원적인 경우가 많다. 자신보다 예쁜 얼굴, 호탕한 성격, 온화한 인품, 착한 몸매 같은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에 쉽게 질투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진부한 프레임이 여전히 통하는 이유다.
뉴욕시립대 심리학과 필리스 체슬러 교수는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한 심리서 '여자의 적은 여자다'에서 "여자는 천사가 아니다. 반만 천사다. 나머지 반은 악마다. 그런데 그 악마가 주로 같은 여자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적었다.

특히 여성의 질투는 대개 사랑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사랑을 독점하려는 욕구이자 본능이다. 그리스 신화 올림푸스 12신 가운데 헤라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었지만 질투 역시 가장 심했다. '질투의 여신'으로도 불리는 헤라는 천하의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정도다.

한 결혼 정보 회사가 물었다. 연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가정했을 때 정신적인 바람과 육체적인 바람 중 어느 것이 더 싫겠느냐고. 남자의 86%는 여자가 육체적으로 바람 피우는 것을 더 싫어한 반면 여자의 69%는 남자가 정신적으로 바람 피우는 것을 더 싫어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여성은 남자의 정신적인 외도를, 남성은 여자의 육체적인 외도를 더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내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여성이 원시시대 때부터 간직한 원초적 두려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번식 자원을 다른 여성과 나누면서 아이와 함께 생존의 위험에 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질투라고 봤다. 반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종족 번식 욕구가 센 남성은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맞는지 불확실해지고 여성이라는 번식 자원을 빼앗길 상황에서 질투를 느낀다는 연구 결과다.

질투 연구에서 근래 들어 흥미를 끄는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가 질투의 새 버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의 적은 남자가 맞다. 그러나 이는 여성이 남자의 경쟁상대 축에 끼지 못했을 때 얘기다. 이제는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 당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동성 간이 아닌 이성(異姓) 간 질투가 곳곳에서 자라나는 시대다. 남자가 여자를 사회생활의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생긴 현상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질투는 피곤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질투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몸까지 병들기 마련이다. 건강한 질투는 느슨해진 관계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한 질투심에 권력이나 출세와 같은 '욕심'이 더해지고 이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서로에게 치명적 결말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질투의 또 다른 이름, '녹색 눈을 가진 괴물(green eyed monster)'에 속은 오셀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자기 손으로 죽인 비극처럼 말이다.

◆역사를 바꾼 질투본색…마오쩌둥은 류샤오치, 스탈린은 투하쳅스키 질투

세계 역사는 곧 질투의 역사다. 세계사 속에 등장한 질투는 때론 한 사람의 운명은 물론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일례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함께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던 자신의 부하에 대한 질투심이 강한 인물로 유명했다.

야마우치 마사유키(山內昌之) 메이지(明治)대 특임교수는 그의 저서 '남자 질투본색'에서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힘의 원천으로서 질투심에 주목했다. 그는 세계사의 전환을 이룬 동인(動因)으로서의 질투의 힘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스탈린은 투하쳅스키 장군을, 마오쩌둥은 류샤오치를 질투했다. 야마우치 교수는 "개인적인 원한과 질투를 반드시 공적인 세계로 가지고 들어와 보복하는 데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도 소련의 스탈린을 못 따라 갈 것이고 마오쩌둥의 질투심도 스탈린에 못지않을 만큼 깊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질투의 힘은 지양(止揚)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마이너스적이고, 네거티브한 감정인 질투야말로 발전하기 위한 긍정적이고 포지티브한 힘이다. 역설적이게도 세계사의 사실(史實)들이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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