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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재발견]세상을 바꾼 위험한 폭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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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學개론

자신을 남과 비교해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다. 입맞춤을 하고 있는 옆자리 꼬마커플을 부러움과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에서 인간의 질투와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해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다. 입맞춤을 하고 있는 옆자리 꼬마커플을 부러움과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에서 인간의 질투와 욕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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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턴과 기형도의 질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있을 때였죠. 겨우 스물여섯 살에 교수가 된 동료가 있었죠. 그를 보니 질투가 생겼어요. 하지만 2년이 못 돼 그를 따라잡았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작년 어느 인터뷰에서 사소해보이는 개인적 경험을 고백했다. 이 고백은 자신의 경제학적 지론인 '불평등의 힘'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그 말 중에서 '질투'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어떤 사람과의 '성취의 차이'에 대해 열등적인 쪽이 느끼는 감정이 질투이며, 그 질투가 촉발시킨 경쟁심으로 불평등을 극복했다는 얘기다. 디턴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 "한국은 내 이론에 잘 맞아떨어지는 모델이죠. 부자가 되려는 욕망이 강했고, 교육과 혁신으로 고속성장을 이뤄냈습니다. 부자에 대한 강한 부러움이 사라졌다면, 경제 활력에 대해 한번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디턴이 이런 말을 하기 오래전에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외친 한국의 시인이 있었다. 기형도(1960-1989)시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들어있는 시의 제목이다. 그 시의 후반부는 이렇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잘난 타인과 못난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20대 시인을 떠올려보라. 남이 나를 얕잡아보는 걸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기어이 남을 넘어서겠다고 벼르며 희망을 품는 질투의 나날. 사랑이라고 표현된 어떤 희망적 대상을 향해 전력질주하느라 스스로를 사랑할 겨를도 없었던, 이 사회의 '질투의 저력'을 저토록 비감하고 솔직하게 드러낸 구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질투의 신 '젤로스'와 착한 질투

도대체 질투가 무엇이길래, 노벨상 경제학자도 요절한 시인도 저토록 힘주어 외치고 있을까. 그리스 신화의 '젤로스(질투의 신)'가 21세기에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부활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리스인들이 질투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통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젤로스의 형제자매들의 면면을 보라. 니케(나이키, 승리의 여신), 크라토스(힘과 강함의 신), 비아(용감함과 폭력의 여신). 저 전투적인 가족 분위기에서 젤로스는 성장했을 것이다.

젤로스(Zelos)는 질투(jealousy)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 낱말은 열정과 집착을 의미하는 질(Zeal,zealous)과, 질투와 경쟁심을 의미하는 질(jeal,jealous)로 분화된다. 어근(語根)이 같은 두 단어는, 이 감정의 변이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집착이 되고 광기가 된다. 광신도를 젤럿(zealot)이라고 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 열정이 증오나 분노 같은 감정과 살짝 칵테일 되면 질투(jealousy)로 폭발한다.

질투라는 감정이 생겨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라고 한다. 자기 짝을 지키기 위해 가장 비용을 적게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질투'라는 행위를 활용하는 것이다. 질투를 하면, 상대방이 긴장을 하게 되고 가능한 한 외도를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랑에서 비롯된 이 원형적(原型的) 질투는, 다양한 상대에 대한 열등감과 부러움과 경쟁심으로 확장된다. 상대방은 가졌지만 자신은 못 가진 것에 대한, 본능적인 질투 또한 사랑의 질투만큼이나 긴 역사를 지녔다. 남녀 관계가 아니더라도 '총애'를 둘러싼 질투는 종종 역사 속에서 충격적인 비극을 만들어왔다. 유신정권 말기에 대통령 앞에서 총격전을 벌인 김재규와 차지철의 갈등 또한 질투의 한 면모라 할 수 있다.

자기와 상대방을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본능적 충동 또한 인간을 부단히 자극해온 게 사실이다. 미(美)의 질투, 재능의 질투, 부(富)나 소유에 대한 질투, 권력에 대한 질투, 명성에 대한 질투 등 다양한 양상으로 인간의 내면은 꿈틀거려왔다. 이 같은 질투심은 시장(市場)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중요한 기틀을 이루는 에너지의 한 원천이 되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질투는 경쟁심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미의 질투는 화장품시장, 의류를 비롯한 패션시장, 성형시장, 다이어트시장, 스타시장, 피트니스시장 등을 번성시킨 힘이고, 소유의 경쟁심은 자본주의 전체의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능, 권력, 명성에 대한 질투심 또한 열등한 쪽을 분발시켜, 세상의 생기와 활력을 돋우는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질투의 순기능'에만 주목한 '착한 질투'이다. 이 감정이 과도해질 때, 범죄가 생겨나고 시장이 교란되며 가치체계가 혼란스러워지고 사회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이 '나쁜 질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열린 사회가 고민해야할 핵심 문제인지 모른다.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이라는 자본주의 소유 양상의 양극화에 관한 리포트들은, 자주 부자들에 대한 빈자들의 증오와 분노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여왔다. 부자들이 자본을 독식함으로써 빈자들이 더욱 가난해졌기에, 부자들이 잘못을 행한 것이거나 책임을 져야할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얘기다. 그런데, 부(富)의 총량이 늘었고, 빈자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소유량이 늘었다면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자들에 대한 '배아픔'과 빈자들이 실제적으로 느끼는 '배고픔'이 같은 것이냐의 문제. 이 문제 또한 질투의 오작동을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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