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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40. 닭과 달걀의 전쟁,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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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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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有)
술집 바텐더가 웃기는 얘기랍시고 던지는 질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에 대한 존의 대답.
“수탉.”

이 썰렁 유머는 영화 ‘타임 패러독스’를 관통한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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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인 ‘프리데스티네이션(Predestination)’은 운명예정설을 의미한다. 캘빈의 예정론으로 대표되는 이 이론은 ‘신이 세상과 인간의 모든 일을 미리 정해놓았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이 말이 세상에 아무 것도 바뀔 게 없고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며, 역사와 삶의 사건 하나하나가 신의 계획과 결정으로 이뤄진 가치있는 일이라는 점을 부각한 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10여년전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자들은 사람의 유전자를 거의 완벽하게 해독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저 예정설(인간의 운명은 유전자에 이미 완전하게 정해져 있다)이 끔찍하게 들어맞아서 인류가 받을 충격을 우려해 그 발표를 미룬 채 완전해독된 게놈지도를 덮었다는 미확인 소문들이 돌기도 했다. 우리는 과연, 주어진 삶을 살아가보는 건가, 아니면,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일까. 내 생을 바꾸고 개척하려는 열정과 노력과 분투들은 의미있는 것인가. 아니면 유전자의 복불복에 결국 승복하는 과정일까.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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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작은 미국의 뛰어난 SF작가인 하인라인 A.로버트(1907-1988)의 짧은 소설 ‘당신들 모두, 좀비들(All You Zombies)'이다. 굳이 그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 제목 속에 스토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모두 들어있다. 아직 게놈 프로젝트의 뚜껑도 열기 전에 돌아간 작가인데 그 상상과 통찰이 놀랍다. 영화는 독일계 호주감독’들‘인 쌍둥이 스피어리그(마이클, 피터) 형제가 만들었다. 1972년생인 비교적 젊은 감독들이다. 이 영화의 제목 ’프리데스티네이션‘은, 시간당국의 책임자 로버트슨이 폭탄제거 임무를 맡은 템포럴요원을 설득하는 말 속에 담겨있다. “당신은 Predestination Paradox(예정설의 역설)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오. 당신은 history(역사)도 없으며 ancestry(혈통)도 없지 않소?” 한국에 들어오면서 바뀐 제목은 저 말의 뒷부분과 ’타임머신‘이란 소재적 측면을 결합한 것이리라.

시간여행(Time Travel)은 이제 SF에서도 진부한 소재로 느껴질 만큼 단골이 되었지만, 처음에 인간이 저 개념에 매료된 것은 ‘기계’에 대한 경탄과 맞물려 있었다. 즉, 타임머신이란 이동기계가 인간을 사로잡았다. 어떤 ‘탈 것’이 있어서 그것에 탑승하기만 하면 과거와 미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짧은 선분 위로 역행도 생략도 없이 나아가야만 하는 생(生)의 단조로움과 허전함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채워주었다. 하지만 그 타임머신이야 말로, 차원을 달리하는 세상에 적용하기 어려운 ‘근대적인 수레’ 개념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요즘은 타임워프(Time Warp)로 상상의 진로를 바꾼 듯 하다. 타임워프는 시간대가 틀어지고 휜, 홀(Hall)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시간적인 왜곡이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홀은 순간이동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한다. 이 영화에서는 바이얼린 케이스같이 생긴 가방이 타임머신이다. 탈 것처럼 그 위에 올라타는 게 아니라, 007가방을 열 듯 숫자키를 맞추면 순간이동한다. 맨마지막 숫자는 이동할 연도(여기에선 1945년과 1970년, 그리고 1992년)를 표시하고 있다. 뭔가 저항과 차질과 장애가 있는 듯 이동한 뒤 고통을 표현하기도 한다. 잦은 시간이동과 무리한 장‘시간’ 이동이 정신병이나 치매같은 질병과 연계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암시는 영화에 중요한 모티프로 쓰인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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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살지 않았다면 죽지도 않을 것이다. 죽은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지에 대해선 논란만 분분할 뿐이다. 우리 눈으로 우리 뒤의 세상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자식들의 피어나는 삶을 보고 있을 때이다. 신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혈통을 통해서 유한한 존재를 계속 변주하는 방식으로 생명의 항존(恒存)을 꾀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쯤에서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저 신의 구상에 한 방 반격을 먹일 ‘존재’를 기획해낸다. 그 존재의 포인트는 아까 말한 썰렁유머의 수탉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탄생 - 성장(탄생) - 노쇠(성장)(탄생) - 죽음(노쇠)(성장)(탄생). 이렇게 탄생이 계속되면서 죽음의 공백을 메워나가는 생명계 방식에 ‘역설(패러독스)’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역설은 바로 ‘저출산 고령화’이다. 그런데 영화는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그런 존재를 창조해낸다. 이른바 제인과 존과 템포럴과 피즐바머이다. 제인은 자비라는 뜻이고 존은 은혜라는 의미이다.

다음부터 스포 有.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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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태어나 업둥이로 고아원에서 자라난 제인은, 1970년에서 이동해온 존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사생아를 낳는다. 1960년에 낳은 이 아기는 다시 고아원에 버려진다. 업둥이로 고아원에서 자라난 제인은, 1985년에서 이동해온 존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사생아를 낳는다. 이렇게 체인을 이어놓았다. 거기에, 제인은 완벽하게 성전환 수술을 하고 이후에 존이 되는 상황을 넣으면 이 연쇄인생은 영원히 돌아가게 돼 있다. 시간을 넘나든 자기복제의 형식이다.

그러나 1992년의 템포럴과 피즐파머가 등장함으로써, 연쇄인생은 복잡한 뫼비우스의 띠를 이룬다. 제인은 폭탄제거 미션을 수행하는 요원이 된 뒤 얼굴에 큰 화상을 입고 거의 페이스오프 수준의 수술을 한다. 그리고 템포럴이 된다. temporal. 그 이름 자체가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이란 의미이다. 1차의 변신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하는 것이었지만, 2차의 변신은 ‘어머니도 못 알아볼’ 외형의 변신이다. 템포럴이 말하는 그 ‘어머니’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자기 자신이다. 템포럴은 선술집 바텐더를 하면서, ‘미혼모’라는 필명을 쓰며 고백기를 잡지에 싣는 존을 만나 타임머신으로 제인에게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 존이 화상을 입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도 템포럴이다. 모든 일이 자기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웅변하는 법도 있었구나.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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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럴이 피즐 파머를 찾아냈을 때, 그 녀석도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폭탄범죄로 1만1천명을 죽인 광기의 인간. ‘피즐’은 불이 타오를 때 들리는 ‘쉬익쉬익’하는 그 불쾌한 소리이다. 피즐 바머는 도시를 불태우는 네로를 연상케한다. 템포럴이 그를 죽이려 했을 때, 그가 죽인 사람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살인자와 범죄자를 거론하며, 오히려 더많은 살육을 예방한 공로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템포럴은 그를 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피즐 파머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뉴욕에서 폭탄테러를 벌여 고아원에 버려진 자기의 연속존재인 업둥이까지 죽였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다시는 이 윤회가 계속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꼬리를 무는 존재의 체인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비교적 바르게 살려고 했던 제인은 왜 피즐파머같은 악마로 변했을까. 이 윤회와 시간여행이 거듭되면서 ‘부작용’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일 뿐 아니라, 스스로 자기에게 불을 붙인 화약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수탉은 알과 암탉 바깥에 있으면서 존재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개입자’이다. 아기를 낳은 뒤 자궁이 파괴되어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한 ‘존’을 수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수탉은 이 모든 시간여행의 기획자인 로버트슨이 아닐까 한다. 그는 제인 - 존 - 템포럴- 피즐바머의 연속인생이, 역사와 조상이 없이도 스스로 복제가 가능하고 자기 안에서만 맞물려 돌아가는 ‘유일한 존재방식’임을 파악하고, 그것을 범죄예방에 활용하려 한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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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생의 굴레를 심문하는 철학적 냉소를 던진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 말이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당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을 아무런 제약없이 죽일 수 있다고 보장해준다면 당신은 그를 없앨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존도 오케이를 하고 템포럴도 오케이를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를 죽일 수 있느냐의 물음이었다. 자기를 죽여, 자기의 윤회를 끊고 자기가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들의 고리를 끊을 수 있으냐는 질문이었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어느 시간을 죽이면, 당신의 슬프고 아프고 나쁜 운명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내가 그일을 할 수 있는 총을 줄테니 한번 해보겠는가? 당신에겐 네 개의 인간이 들어있다. 어쩌면 수백번 윤회를 거쳐 모두가 좀비가 되어 역할극을 하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제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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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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