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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진짜 현장'이 '체감 정책'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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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대학시절 껌팔이를 한 적이 있다. 흔들리는, 비좁은 버스 통로에 손잡이를 위태롭게 잡고 "저는 소년가장입니다. 껌을 팔아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의 작은 보탬이 우리 식구를 살리는 소중한 정성이 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를 외쳤다. 내가 전공했던 인류학의 한 수업과목이었다. 이른바 참여관찰. 어떤 공동체와 같이 생활하면서 직접 체험해 보는 연구방법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당시 얼굴이 화끈거려 제대로 껌을 팔지 못했다. 옷차림도 추레하게 입고 얼굴도 씻지 않고 나섰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 당장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껌을 팔아야만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 소년의 절절한 가슴이 어떠했을지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껌을 사며 돈을 주는 승객들은 어떤 마음으로 소년을 대하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말이 참여관찰이지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체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올해 정부의 주요 키워드가 '체감(體感)'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책 체감의 해'로 삼자고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정책'을 강조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는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중산층과 서민의 어려움을 정책 책임자들은 체감할 자세가 돼 있는 것일까.

현 부총리는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지난 2일 전주 한옥마을을 현장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지역 문화산업 대표, 청년창업가 등과 간담회를 가지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정책과제를 발굴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출입기자 20여명도 같이 했다. 지역대표와 대화하는 자리에 많은 기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카메라가 터지는 상황의 간담회에서 어떤 체감을 할 수 있었을까.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다음은 누가 말하고 그것에 대해 부총리가 답하는 '이벤트식 현장방문'으로는 절절한 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있다. 그 현장에 제대로 서 있다면 갈등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짜인 시나리오에 맞춘 지금과 같은 현장방문으로서는 체감은커녕 오히려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시나리오는 훌륭할지 몰라도 그것은 현실과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정책 책임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굳이 현장방문 계획을 사전에 공개하고 기자들을 몰고 다닐 게 아니다. 각종 회의, 공식 행사 등으로 주중에는 여유가 없다하더라도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 혼자 나서 보라고. 버스 타고, 지하철 오르고, 지하상가 들러 직접 이것저것 물건 사보고, 가까운 공원에 나가 그곳에서 산책하고 있는 이들과 어떤 때는 생뚱맞은 이야기 해보고, 포장마차 들러 소주 한 잔 하며 두런두런 밤이 익어가는 것을 느껴보라고. 그런 실제 체험이 '체감할 수 있는' 확률을 더 높여줄 것이다. '체감의 해'로 삼겠다고 한다면 구태의연한 '이벤트식 현장방문'은 이제 수정해야 할 때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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