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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희중의 '숨결' 중에서

최종수정 2013.11.22 11:09 기사입력 2013.11.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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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할머니 돌아가신 후/내가 아는 으뜸 된장 맛도 지상에서 사라졌다//한 사람이 죽는 일은 꽃이 지듯 숨이 뚝 지는 것만 아니고/목구멍을 넘나들던 숨, 곧 목숨만 끊어지는 것만 아니고/그의 숨결이 닿은 모든 것이, 그의 손때가 묻은 모든 것이,/그가 평생 닦고 쌓아온 지혜와 수완이/적막해진다는 것, 정처 없어진다는 것/(……)

이희중의 '숨결' 중에서

■ 노인 한 명이 죽으면, 손때 묻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속담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만큼의 지식과 경륜을 지니고 있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서재 하나가 불타는 걸로 줄이면 안될까, 하는 쑥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시를 읽으면, 그런 '죽음의 자격' 같은 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한 사람이 이 지상에서 사라질 때,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유일무일한 존재감이 역사 속에 파묻히는 것이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어도, 한 생애의 미시사에 깃든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사라진다. 하늘이 생명을 내고 인간을 낼 적에, 그 어떤 존재도 똑같이 만들지 않았으며, 똑같은 의미와 똑같은 궤적을 그리는 일이 없도록 고유의 식별코드를 부여하지 않았나 싶다. 덧없는 삶과 허망한 죽음으로 보일지라도, 조물주로선 오직 우주 유일의 존재를 켰다가 끈 것이다. 이희중 시인처럼 나의 외갓집도 된장 맛 하나는, 내 입과 혀에 최고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간 뒤, 나는 인류 된장사(史)의 종장을 읽은 듯 했다. 세상의 모든 장독대와 항아리와 빛과 소금과 주름진 손이 다 모여 공력을 들여도, 눈감은 외할머니의 숟가락에 들려있던 된장국물을 이길 수 없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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