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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명인의 '꽃을 위한 노트2' 중에서

최종수정 2013.11.15 11:18 기사입력 2013.11.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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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끝내고 출근한 연구실/겨우내 움츠렸을 금화산 홀로 꽃대를 세우고 있다/ 보라 꽃 몇 송이가 절벽처럼 아뜩했다/어떤 우레 저 난의 허기 속을 스쳐간 것일까/석장 속꽃잎으로 가득 퍼담은 노란 조밥//뿌리 부근에 낙화가 있어 살펴보니/또 다른 꽃대 하나가 온몸을 비틀면서/두 그릇이나 꽃밥을 돌밭에 엎질러놓았다/각혈 선명한 저 절정들!/연한 줄기 자칫 꺾어버릴 것 같아/추스려 담으려다 그만두었다

점심시간에는 교직원 식당에서/암 투병하는 이선생 근황을 전해들었다/온 힘을 다해 어둠 너머로 그가 흔들어 보냈을/플라스크 속에 섬광의 파란 봉화들!/(……)

김명인의 '꽃을 위한 노트2' 중에서

■ 금화산은 추위를 견뎌 꽃을 피우는 보세란이다. 이 식물이 기특한 것은, 나무도 아닌 것이 오직 풀대와 풀잎사귀로 겨울을 견뎌내고 스스로 온기를 찾아내 꽃잎을 밀어올리는 일이다. 건물 짱짱하게 지은 꽃나무가 아니라, 부실한 가건물같은 것으로 바람과 한기를 견뎌냈으니 살아있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에 저 보라꽃의 향연이라니...그런데 그 중에 낙화 몇 송이가 있다. 다 된 꽃밥을 퍼질러놓은 건 꽃대 하나가 온몸을 비틀며 줄기를 벋다 일어난 일이다. 삶은 위치이며 죽음은 파동인가. 살았다고 벋은 자리에 죽음이 있다. 암투병하는 동료가 내뿜는 숨기운들과 꽃송이들. 몇년째 논문을 미룬(나처럼!!) 학생이 피우지 못한 꽃송이와 얼어죽을 시업(詩業), 얼어죽지 말라고 훈계하는 내가 더 구겨넣었던 시인 인생은 그래 무슨 꽃을 피웠단 말인가? 금화산을 바라보며, 방금 엎어버린 꽃밥을 바라보며.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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