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사전에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이런 사태가 끊이질 않는 것일까. 현장 작업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유사시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평소 모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걸 숙지하게 하려면 평소 직무기술서를 외우고 다닐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어느 직장에도 직무기술서가 존재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직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스스로 파악하는 데 있어서 직무기술서만큼 도움되는 것은 없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직장에서도 직무기술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단지 기술서를 위한 기술서 수준의 업무 매뉴얼이 있을 뿐이다. 매뉴얼 속에 기술돼 있는 문장 형태의 내용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매뉴얼이 존재한다 해도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표준어와 표준 문장을 구사하지만, 직장에 취업하면 그날부터 문법과 동떨어진 직장 특유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고 이를 당연시하는 것이 풍토화되다시피 했다. 이 지적에 대해 의문이 든다면 사내 보고서나 사내 품의서, 또는 사내 규정집을 지금이라도 한번 들여다 보라. 정체불명의 표현법이 직장 언어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의 직무기술서에서 신문기자 수준의 언어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직무기술서를 일단 쓰게 하고 고칠 점은 없는지 전문가로 하여금 검토하게 하면 충분하다. 작성 단위는 개인이 담당하고 있는 단위 업무 하나에 대해서 작성하는 것이 합당하다.
예를 들면 직원 각자 세 쪽 정도로 자신의 담당직무에 대한 기술서를 쓰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구성원 전체가 순서를 정해 쓸 필요는 없다. 각자 독자적으로 작성하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회사 전체 직무기술서를 완성하는 데 1, 2주면 충분하다. 실용성 있는 직무기술서가 없다면 대형사고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안전불감증의 근본적인 치유를 말하면서 업무기술서를 빼놓아서는 안된다.
문송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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