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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혁명]회사에…'내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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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그 후…근무, 업무, 일이 변한다
'오피스 프리' 실험하는 SK이노베이션
주1회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NHN
부분 재택근무 도입하는 기업의 속사정

12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서린사옥 스마트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12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서린사옥 스마트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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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이승진 기자] "어, 정 과장님 여기 계셨네요?"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SK이노베이션 서린 사옥에서 후배 직원이 정희철(가명) 과장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은 출근 장소나 시간이 제각각이다. 이날 정 과장은 오전에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에 회사로 출근했다. 출근한 곳은 LP판과 음향기기로 둘러싸여 있는 음악 감상실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 공유 오피스 형태로 업무 공간 탈바꿈에 나섰다. '팀-실-본부' 단위 별 지정좌석제가 아닌 원하는 자리에 앉아 일한다. 공유 오피스는 근무 공간 '워킹존'과 임직원들의 복지ㆍ휴식을 위한 카페나 수면실, 음악감상실 등으로 이뤄진 '퍼블릭존'으로 구분된다. 독서실처럼 집중하기 좋은 공간부터 카페처럼 개방된 업무 공간도 있다. 정 과장은 조용한 공간에서 음악과 함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음악감상실로 출근했다. 정 과장 외에도 카페테리아에서 노트북을 펼친 직원, 스탠드가 설치된 워킹존에서 서서 근무하는 직원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SK이노베이션 '오늘은 사무실 어디서 일해볼까'

SK이노베이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직장과 업무에 대한 기본 개념을 새롭게 정립 중이다. 지난달 18일부터 '1+3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한 달간 첫 주는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 3주는 재택근무를 포함해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오피스 프리(office free) 기간'이다.


SK이노베이션의 공유 오피스와 '1+3 테스트'의 결합은 혁신이다. 부서원들이 한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전통적 근무 형태에서 탈피했고, 업무 수행이 가능한 모든 곳이 회사라는 정의 아래 기존에 지니고 있던 직장이라는 개념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근무 실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안팎에서 업무 효율 저하와 직원 간의 소통 부재 등을 걱정했지만 변화된 업무 환경에 직원들의 적응은 빨랐고 부작용은 찾기 어려웠다. 자율성이 늘어난 만큼 책임도 따른다. 직원들은 매일 근무 위치와 시간, 출퇴근 소요 시간을 사내 시스템에 기록한다. 본인이 맡고 있는 업무와 그날의 업무 진행도를 기록하는 등 근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항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정 과장은 이처럼 업무 환경이 바뀌면서 스스로 업무를 설계하게 되었고 스트레스가 줄었다. 정 과장은 "각자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효율적 환경이 다른데 공간과 방식 제한이 없어져서 좋다. 업무를 스스로 설계해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한곳에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편해졌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더 명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서린사옥 스마트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업무 시작에 앞서 자리를 선택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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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서린사옥 스마트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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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좋아하고 회식도 즐기는 19년 차 김지혁(가명) 부장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워킹존에서 만난 김 부장은 한 직원과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다. 타 부서 직원이지만 공유 오피스에서 만나 친해진 사이다. 3일 이상 같은 자리에서 업무를 할 수 없게 정해둔 사내 지침 덕분이기도 하다. 김 부장은 "과거에는 프로젝트를 같이 해야만 친해질 수 있었지만 요즘은 매일 다른 부서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이 늘었다"며 "타 부서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 은 4주간 새 근무방식의 성과를 점검한 뒤 근무 혁신 방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오는 8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주재하는 '이천포럼'에서 재택근무 실험 결과를 공유하고 자유근무를 계열사 전반으로 확대 적용할지 결정한다.


SK그룹 직원 중 일부는 재택근무가 길어지자 '온라인 회식'을 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날짜에 다른 장소로 출근하다보니 마주치기가 오히려 힘들어졌다. 특히 혼자 사는 직원들의 경우 끼니마다 '혼밥'을 하기 일쑤다. 친한 직원들끼리 노트북 앞에서 각자 밥상을 차려 함께 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SK그룹 한 관계자는 "혼자 사는 직원들의 경우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근무형태의 물리적 변화 외에도 사회적, 정서적 변화 등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NHN "직원들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일을 잘하게 하려고 재택근무 도입"
12일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NHN 인사지원팀 직원이 화상으로 팀원들 함께 접속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성남=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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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NHN 인사지원팀 직원이 화상으로 팀원들 함께 접속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성남=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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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좋아해서 재택근무를 도입한 게 아닙니다.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거죠." 백승욱 NHN 인사팀장이 '수요오피스' 제도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NHN 직원들은 매주 수요일에 사무실 대신 카페, 공유오피스 등 원하는 곳으로 출근한다. 5월부터 '수요오피스' 제도가 시행됐다. 주 3회 재택근무를 진행하다가 정상근무 체제로 전환하면서 부분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주 1회로 제도화한 것이다.


인사 총괄 임원인 이승찬 NHN 이사는 "수요일마다 재택근무하려고 집에 PC도 샀다. 나오니까 오히려 직원들 눈치가 보였다. 요즘 직원들이 목요일에 월요병이 온다는 농담도 한다"고 했다. 그는 "임원들도 업무 속도가 빨라져서 좋아한다. 회의를 기다리거나 보고하는 데 드는 시간이 적다. 메일이나 문서작성 대신 전화로 빨리 확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NHN 직원들은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수요일'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다. 이 이사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회의 없이 혼자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효율을 높여줄 것이라 판단했다"며 "수요일은 업무 효율이 높다고 한다. 중간 점검한다는 느낌도 준다"고 말했다. 백 팀장은 "출퇴근 시간이 줄어서 그 시간에 일하겠다는 직원들을 보면, 회사 입장에서도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찬 NHN 인사총무지원실 이사

이승찬 NHN 인사총무지원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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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당분간 '수요오피스'를 유지할 방침이다. 이 이사는 "지금이 아니면 재택근무를 시험해볼 수 없다. 6개월 정도 이어가면서 방향을 잡아보려고 한다"며 "주 1회 재택근무는 회의나 업무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뿐 아니라 업무 전반에 '언택트'가 스며들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던 직원들이 협업 툴로 업무 과정을 공유하고 직원 대상 교육이나 채용설명회도 라이브로 했다. 백 팀장은 "재택근무하면서 면접보기가 편해져서 오히려 면접을 더 많이 봤다"며 "집에서 상의만 차려입고 반바지 입고 면접을 봤던 직원이 익숙한 환경에서 면접을 봐서 훨씬 편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ICT 기업에 다니는 직원은 개발자도, 기획자도, 스태프들도 노트북 한 대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ICT 업계는 근속 연수가 다른 업종에 비해 짧다. 다른 산업에 비해 이직도 활발하다. 실력 있는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더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백 팀장은 "우리는 직원들이 일을 잘하게 만드는 방향을 늘 고민한다"며 "직원의 부모님들도 유명 대기업보다 우리 회사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경험한 직원들 "의전 없어도 업무는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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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재택근무를 경험한 롯데그룹 직원들은 스스로 재택근무를 평가하면서 '100점 만점에 80점'이라고 답했다. 18년 차인 롯데지주의 정경호(가명) 차장은 "그동안 하나의 업무를 위해 수많은 회의가 열렸고 여러 가지 의전행위가 이뤄졌는데 재택근무를 해보니 그런 것들이 없어도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됐다"며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는 이제 '뉴 노멀(새로운 사회적 기준)'이 됐다. 면대면 회의나 보고에 익숙한 직장인들이 자유자재로 화상회의를 하고 사무실 직원들과는 온라인으로 안부를 나눈다. 재택근무자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정 차장은 "사무실에서 대화로 업무 지시를 할 때는 몇 번씩 되묻는 경우가 생기는데, 메신저로 업무를 전달하니 오히려 더 간단명료해졌다"고 설명했다.


직장생활 9년 차인 허재석 SK텔레콤 전시기획팀 매니저는 "재택근무를 해보니 그동안 '라떼(과거를 회상하는 기성세대를 지칭하는 신조어)'처럼 산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만나서 프린트물 보며 회의하는 게 익숙했는데 막상 협업툴로 회의해보니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가 시간이 늘어나 만족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신 개인적 시간이 늘어난 만큼 업무에 더 할애하기도 한다. 허 매니저는 "그동안 몰랐던 삶의 범주를 체감했다"면서도 "가족과 가까워진다고 해서 업무를 덜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량은 같기 때문에 평소에 아이들을 돌보느라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주말에 관련 업무를 메우기 위해 일을 더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부족한 2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회사와 직원이 서로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 매니저는 "리더는 직원들을 믿어야 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도 안일해지지 않도록 자기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 모두가 노력한다면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근무'와 동일하게 여기는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최두영(가명) 롯데쇼핑 대리는 "가정 내에서 재택근무를 근무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아직 곳곳에 남아있다"며 "재택근무는 공식적 업무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공간이라는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시도 때도 없이 재택근무자에게 화상회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프라이버시를 배려하는 문화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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