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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8주기…사건 현장 인근 공중화장실 여전히 '안전 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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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강력범죄 777건
법 개정에도 소급 안 돼 '구멍'
"정부, 적극적인 홍보 필요"

"한 층 내려가시면 돼요. 휴지 챙겨서요."


20일 오후 2시께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한 빌딩. 입점한 가게 점원에게 화장실을 문의하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검정 펜으로 '남자', '여자'라고 쓰인 낡은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사용 칸은 분리돼 있었지만, 화장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공유하는 탓에 오고 가는 남녀 이용객이 마주칠 수 있었다. 화장실 입구를 차단하는 칸막이는 허름한 커튼 하나뿐. 반대편에서 얼핏 봐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화장실 내부로 들어가 살펴보니 상태가 미흡하긴 마찬가지였다. 비상시 긴급 출동을 위한 비상벨은 설치돼 있지 않았고, 불법 카메라 촬영을 방지하기 위한 안심 스크린도 구비돼 있지 않았다.


이곳은 2016년 5월 한 남성이 일면식 없던 20대 여성을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살해한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10여분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서울 서초구 인근에 있는 한 빌딩 공중 화장실. 사용 칸이 마주보고 있어 들어오고 나올 때 남녀 이용 고객이 마주치는 상황이 빈번하다.[사진=이지은 기자]

서울 서초구 인근에 있는 한 빌딩 공중 화장실. 사용 칸이 마주보고 있어 들어오고 나올 때 남녀 이용 고객이 마주치는 상황이 빈번하다.[사진=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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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온상 된 공중화장실…매년 평균 141건

8년 전인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가까운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빌딩 15곳의 공중화장실을 살펴본 결과, 대다수가 현행법이 명시한 안전 설비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가 아예 같은 칸을 공유하는 '남녀 공용 화장실'은 3곳, 사용 칸은 다르지만, 남녀 칸이 서로 마주 보며 입구를 공유하는 곳은 2곳이었다.


비상벨과 CCTV 등 안전 설비도 미흡했다. 비상벨을 설치한 곳은 3곳, CCTV를 설치한 곳은 2곳으로 전체 절반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주요 번화가 일대 공중화장실이 여전히 범죄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8주기…사건 현장 인근 공중화장실 여전히 '안전 불감' 원본보기 아이콘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전국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력범죄는 총 777건이었다. 2022년만 놓고 보면 총 142건으로, 유형별로는 강간과 강제 추행 등 성범죄가 92.2%(131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고 특성상 폐쇄적인 공중화장실은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강력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고 말했다.


법 개정됐지만, 소급 적용 안 돼 '구멍'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일대에서 서울여성회 등 주최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8주기 추모행동이 열리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일대에서 서울여성회 등 주최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8주기 추모행동이 열리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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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바닥 면적 합이 2000㎡(605평) 이상인 업무시설과 상가건물 등 근린생활시설은 '남녀 분리 화장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남녀 화장실 분리에 관한 법이 처음 제정된 시점은 2004년으로, 당초 근린생활시설은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1년 후인 2017년 개정됐다.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면서 입법된 것이다.


그러나 법 시행 이전 지어진 기존 건축물은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노후 건물을 중심으로 구멍이 발생하고 있다. 분리 공사에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강제가 아니어서 공사를 꺼리는 건물주가 많다.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 건물을 대상으로 남녀 화장실 분리 지원금을 주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참여율은 저조하다.


실제 2019년 행정안전부가 22억원을 투입해 남녀 화장실 분리 지원 시범 사업을 벌였지만, 참여하는 곳이 적어 조기 종료됐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화장실을 분리하려면 추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민간 건물 대상이다 보니 구조상 여건이 되지 않는 곳이 많다"며 "2019년 지자체 보조 사업을 벌였지만 1년 만에 끝났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이후 각 지자체를 대상으로 비상벨 등 안전 설비 설치에 관한 조례를 정하도록 했으나, 이 역시 참여율은 미미하다. 3월 말 기준 전국 지자체 228개 가운데 비상벨 설치에 관한 조례를 둔 곳은 148개로 전체 65% 수준이었다. 실제 올해 5월 기준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광역시 7개(서울·인천·대전·대구·울산·광주·부산)의 비상벨 설치 비율은 40.7%에 그쳤다.


강남역 살인사건 8주기…사건 현장 인근 공중화장실 여전히 '안전 불감' 원본보기 아이콘

전문가들은 화장실 분리 사업 및 비상벨 설치에 관한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건물주들의 책임 의식도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 건물을 대상으로 남녀 화장실 분리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자부담금이 드는 탓에 굳이 공사하려는 사례가 적고 해당 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화장실 안전에 관한 내용을 홍보하고 더불어 건물주들 역시 사회 환원 차원에서 화장실 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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