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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내용 빼고 수사보고서 작성해 피의자 체포한 경찰… 대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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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지인을 통해 자진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자신의 사정으로 출석을 보류시켰던 사실을 감추고 '도주 중'이라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의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수사보고서에 체포 사유와 관련된 일부 중요 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 해당 피의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허위사실을 기재했다고 볼 수 없고, 허위공문서작성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에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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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직권남용체포,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허위공문서작성죄의 성립 및 고의, 직권남용체포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부산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했던 25년 경력의 경찰 최씨는 2020년 6월 19일 부산 동래구 소재 외국인 건설노동자 숙소에서 발생한 특수상해 사건의 피의자 A씨에 대한 사건 수사를 맡게 됐다. 베트남 국적을 가진 A씨는 역시 베트남 국적의 피해자 얼굴에 전치 2주의 상해를 가하고 도주 중인 상태였다.

사건 당일 최씨는 베트남계 한국인 통역인 B씨에게 A씨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A씨에게 자진 출석을 권유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A씨는 B씨와의 통화에서 "베트남에 빚이 많다. 불법체류 상태라서 잘못하면 강제출국당할 수 있다. 강제출국당하면 베트남 빚은 어떻게 하냐"고 말했고, 2020년 6월 23일까지 연락이 이뤄지다가 이후 같은 해 7월 6일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그사이 A씨가 근무하던 직장의 현장소장 C씨가 A씨와 연락을 이어가며 자진 출석을 권유했고, 2020년 7월 6일 함께 경찰에 출석해 조사받기로 약속했다. 출석 예정일인 2020년 7월 6일 오전 9시경 A씨는 앞서 통화했던 통역인 B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경찰서에 가고 있다"고 말했고, B씨는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며 "우선 가서 조사를 잘 받아"라고 말했다.


잠시 뒤 A씨와 만난 현장소장 C씨는 같은 날 오전 11시20분경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A씨와 함께 있고, 조사를 받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다른 사건 수사로 외근 중이던 최씨는 '외근 중이라 오늘은 조사가 어려우니 다음에 오라'는 취지로 출석을 보류시켰다. 이후 A씨는 체포될 때까지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C씨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최씨가 소환하기를 기다렸다.


A씨의 출석을 보류시킨 최씨는 통역인 B씨와 통화하면서 "A씨에게 연락을 받았다"라며 "조사를 받으러 온다고 했다. 하지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건이 있어서 오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조사 일정을 연락해 주겠다고 A씨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B씨는 최씨의 부탁대로 A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A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통화를 하지 못 했고, 이를 전해 들은 최씨는 "일단 알겠다. 내가 C씨랑 얘기할 테니까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라. A씨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와 다음날인 2020년 7월 7일 최씨가 C씨와 통화할 때 C씨는 'A씨와 연락이 두절됐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지만, 최씨는 2020년 7월 7일 오후 'A씨가 현재 도주 중이고 연락 두절 상태'라는 취지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2020년 7월 8일 A씨에 대한 체포영장 신청 심사를 의뢰했고, 같은 해 7월 9일 체포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아 7월 10일 A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스스로 A씨의 자진 출석을 보류시켰던 사실을 숨기고 A씨가 도주 중이고 연락도 되지 않는 것처럼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허위공문서작성이고, 이를 토대로 A씨를 체포한 것은 직권남용체포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유리한 사정을 기재하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는 있으나, 사실 기재에 해당하고 허위 기재라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불법체류자로서 범행 직후 조치원 쪽으로 도주했고, 사용하던 대포폰의 전원을 끄기도 한 점 ▲A씨에게 유리한 정황을 기재하지 않은 것일 뿐 허위로 기재한 것은 아닌 점 ▲최씨가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까지 A씨의 소재를 알지 못했던 점 ▲강체 추방을 우려하던 A씨가 수사기관에 자진 출석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설사 A씨에게 다소 유리한 정황(자진 출석 의사를 밝혔던 사실)을 기재했다고 해도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최씨가 수사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 A씨의 자진 출석 의사 표명 및 출석 보류 경위에 관한 내용 등을 누락하고, A씨가 도주 상태에 있다거나 소재 불명 상태에 있다고 기재한 것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서 허위"라고 판단했다.


또 "최씨가 수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후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경찰공무원, 검사, 판사를 기망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후 그 영장에 기해 A씨를 체포한 사실이 인정된다"라며 최씨의 직권남용체포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비슷한 사정을 들며 "비록 피고인이 이 사건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 A씨에 대한 체포 사유와 관련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나, 이 사건 수사보고서 내용에 거짓이 있다거나 피고인에게 허위공문서작성에 관한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문서의 작성 의도 내지 목적이 부정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기재된 내용에 거짓이 없다면 허위공문서작성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또 재판부는 "허위공문서 작성의 고의 내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도 어려운 이상, 이를 전제로 한 직권남용체포의 점 역시 그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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