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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이민자의 도시' 뉴욕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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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미국 뉴욕시는 흔히 '이민자들의 도시'로 불린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수십만명의 이민자가 수속 절차를 밟았던 엘리스섬이 위치한 데다, 거주인구의 37%가량은 본인 또는 부모가 해외 태생으로 파악된다. 무려 170개 이상의 언어가 이곳 뉴욕에서 사용된다고 하니 '멜팅팟' '인종의 용광로'라는 표현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그런 뉴욕이 최근 들어 넘치는 이민자, 이주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봄 이후 뉴욕시로 몰려온 이주자만 무려 9만명 이상. 아무리 세계 최대 도시라 해도 끝없는 이주자 물결을 감당하긴 어렵다. 결국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는 이주자 수십, 수백명이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 앞 인도를 점령해 마치 '난민캠프'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NBC,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연일 "'블루스테이트' 뉴욕이 이민자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를 쏟아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내 대표적 임시수용시설인 루스벨트 호텔 앞 인도에 이주자들이 늘어서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내 대표적 임시수용시설인 루스벨트 호텔 앞 인도에 이주자들이 늘어서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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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점을 넘어선 듯한 광경은 일주일가량 지나면서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하다. 이제 맨해튼 내 대표적 이주자 수용시설인 루스벨트 호텔 앞에는 이주자 수백명이 모여있거나 노숙 중인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 현지 언론들의 보도도 상대적으로 잦아들었다. 하지만 뉴욕시의 이민자 위기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NYT는 "이주민들의 발길이 끊긴 것이 아니다"면서 "뉴욕시는 지난주에만 2900명이 추가로 도착했다고 확인했다"고 짚었다. 부족한 수용시설로 인해 길거리를 점령했던 이주자들은 일단 호텔 앞 인도를 떠나 뉴욕시 퀸즈의 대형 교회, 브루클린 선셋파크의 레크리에이션 센터, 업스테이트 지역의 호텔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왜 뉴욕시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여기에는 먼저 정치적 요인이 있다. 대부분 중남미 출신인 이들 이주자는 상당수가 국경 인접 지역인 텍사스주, 플로리다주, 애리조나주 등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공화당 소속 그렉 에벗 텍사스 주지사 등은 작년부터 국경을 넘은 이주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 워싱턴DC 등 블루스테이트로 보내고 있다. 친이민 정책을 펼쳐온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더욱이 뉴욕시는 미국 주요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난민이 요청할 경우 보호시설을 제공해야만 하는 '쉼터 권리 명령'이 규정된 곳이다. 수많은 이주자들은 권리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제공될 보호시설을 기대하고 뉴욕시로 오고 있다. 이러한 법적 의무는 뉴욕시가 항상 이민자들의 도시로 불려온 배경 중 하나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쉼터를 제공해야 하는 도시에 쉼터가 다 차버리면 어떻게 될까.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결국 지난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공간이 없다(no more room)"면서 이주자 문제에 연방정부가 개입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현재 이주자들에게 제공하는 숙소, 음식 비용은 뉴욕시민이 낸 세금에서 충당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이미 50억달러가 지출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뉴욕시 전체의 보건, 소방, 공원 관련 예산을 합친 액수를 웃돈다. 이주자 문제로 뉴욕시가 향후 3년간 지게 되는 추가 재정부담만 12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애덤스 시장은 "우리보다 (연방정부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은 국경지역 주들이 있다"면서 "그들은 그 돈으로 사람들을 뉴욕행 버스에 태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뉴욕 사람들의 동정심은 무한할지 모르지만, 뉴욕시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면서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 이제 내리막길"이라고 우려를 쏟아냈다.

그의 말처럼 뉴욕시의 진짜 이민자 위기는 이제부터일 수 있다. 무조건적 수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짊어지게 될 뉴요커들도 각자 시험대에 설 것이다. 미국 남부 출신으로 뉴욕에 10년째 거주 중인 앨리슨 씨는 "인도주의적이고 연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이곳이 민주주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뉴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뉴요커는 "우리의 세금은 자선용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주자들을 긴급 수용한 브루클린 선셋파크 등 곳곳에선 뉴욕시의 이주자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결국 이번 이슈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관통하는 뜨거운 정치적 소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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