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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계속운전도, 해체도 지지부진…착잡한 고리1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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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운전 승인기간 10년→20년 늘려야"
기술은 있는데…고리1호기 해체 5년 넘게 지지부진

'원자로 출력 0%', '발전기 출력 0MWh'


부산시 기장군에 자리 잡은 고리원자력 2호기의 주제어실(발전소의 뇌 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에 들어서면 이런 디지털 문구가 정면으로 보인다. 원자로 제어반에 적힌 이 숫자는 고리2호기의 운영이 중지됐음을 알려준다. 정상 운전 중이었다면 0%가 아닌 ‘100%’, 0MWh가 아닌 ‘680MWh’가 적혀있었을 터.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계속운전 신청 시기가 늦어진 탓에 벌어진 일이다.

원전 10기 계속운전 시 에너지비용 108조원 절감

지난 12일 찾은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들어서기 전 출입 서명을 하기 위해 들른 홍보관에서 노트북과 휴대폰 같은 전자기기는 내부로 반입할 수 없다는 안내를 들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설치된 높이 10m의 차수벽, 이동형 발전차와 도로복구설비 등 38대의 비상대응설비를 보유한 통합보관고까지 눈으로 확인하니 안전이 최우선인 국가보안시설에 들어간다는 게 실감 났다.

한수원은 현재 고리2호기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다. ‘계속운전’이란 최초 운영허가 기간을 채운 원전이 안전기준을 만족해 계속 운전하는 것이다. 고리2호기의 최초 운영허가 기간은 1983년 4월 9일부터 40년. 중단 없이 재가동됐으려면 허가 만료 3~4년 전인 2019~2020년에 계속운전 절차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 탓에 못 하고 뒤늦게 이번 정부 들어서 시작했다. 40년간 부산시민 전체가 10년 쓸 수 있는 규모의 전력을 공급해온 ‘에너지 효자’는 올 4월 8일 가동을 멈춰야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제1발전소 소관 원전(1·2호기)은 모두 멈춤 상태다.


일각에서는 계속운전을 '수명연장'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한수원 관계자는 “운영허가 기간은 원전의 기술적 수명과는 다른 의미”라며 "과거 미국에서 원자력발전 사업자의 경제적 독점을 막기 위한 조치로 설정한 기한의 개념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가동 원전 439기 중 절반이 넘는 233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 법상 계속운전을 신청하면 안전성 평가를 거쳐 10년씩 운영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연장기간이 20년으로, 미국의 경우 80년까지 운전을 허가받은 원전도 있다.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평가 본심사를 진행 중이다. 한수원은 각종 절차를 고려해 이르면 2025년 6월 재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재가동 시점(2025년 6월 목표)이 아닌 최초 운영허가 기간 만료 시점(2023년 4월 8일)부터 10년 더 운영할 수 있는 거라 2년 2개월간의 발전 공백은 불가피하다.


1986년 고리2호기 운영 현장 근무를 시작으로 38년째 한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상영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깝다”며 “재가동 시점부터 10년 더 운영할 수 있도록 하거나, 세계적 추세를 따라 미국과 일본처럼 한 번에 20년 더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고리2호기 주제어실에는 가동 때처럼 8시간마다 직원들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발전 업무는 없어도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방사선·잔열 냉각 기능 유지 작업, 각종 기기 점검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어실 천장에는 “고리2호기 계속 운전으로 더욱 안전해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도 붙어있었다. 운전이 멈춘 날 직원들이 계속운전을 위한 각오로 함께 붙였다고.

지난 4월 8일부터 운영을 잠시 멈춘 고리2호기의 주제어실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지난 4월 8일부터 운영을 잠시 멈춘 고리2호기의 주제어실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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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2호기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7년 이내 운영허가기간이 만료되는 국내 원전은 고리 3·4호기 등 10기가 있다. 한수원은 이 원전들을 계속운전할 경우 약 107조 6000억원 이상의 국가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작년 평균 전력판매단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 10년간 발전량을 LNG로 대체할 경우 더 발생했을 전기요금”이라고 설명했다.

고리1호기 해체 기술은 있는데…시점 불투명

고리2호기와 형제처럼 붙어있는 고리1호기는 다른 이유로 멈춰있었다. 재가동 승인을 기다리는 동생과는 달리, 1호기는 2017년 영구정지돼 해체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화와 안전모를 갖춰 고리1호기 터빈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발전기와 터빈, 밸브 같은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앞으로 제염 과정을 거쳐 해체될 시설이다. 박웅 고리1발전소 안전관리실장은 “15년 정도 걸리는 ‘즉시해체’ 방식으로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며 “방사선량을 낮춰 약 60년간 해체를 진행하는 ‘지연해체’ 방식보다 해체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해체한 부지를 빠르게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고리1호기 터빈룸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고리1호기 터빈룸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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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개발된 상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정부 연구개발사업(R&D)과 연계해 해체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글로벌 해체 시장을 선점할 의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체 승인이 떨어져도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를 둘 곳이 없다면 해체가 불가하다는 점도 문제다. 지금은 사용후핵연료 485다발(167.18t)이 수조 형태인 습식저장시설에 저장돼있다. 한수원은 고리본부 내 건식저장시설을 만들어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커 어려운 상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2021년 5월 규제기관(원안위)에 해체 승인을 신청했는데 2년 넘게 승인이 나지 않고 있고,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있다”며 “2032년 말까지 해체를 마무리하는 게 당초 목표였으나 이제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기장(부산)=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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