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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탈북민 피폭' 오염 식수원, 조사하고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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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피폭검사 때 식수원 조사한 뒤 비공개
"유의미한 결과…무관하다 단정 지은 건 오류"
통일부 "공개 가능한 자료 최대한 공개하겠다"

지난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 의한 피폭이 우려되는 탈북민의 식수원을 조사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일반인 수백 배의 피폭량이 검출된 이상 소견자 대부분은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발원한 물이 땅속으로 흐르는 '지하수'와 이를 상수도 시설로 공급하는 '수돗물'을 음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2017~2018년 탈북민 40명에 대해 피폭검사를 실시하면서 북한에서 거주할 당시 식수원도 조사했다. 2017년 9월 위력이 가장 컸던 6차 핵실험 직후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가 제기됐으며, 동일한 장소에서 갱도만 바꿔 거듭 핵실험을 한 탓에 암반 균열로 인한 수질 오염이 의심된다는 전문가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같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단독]'탈북민 피폭' 오염 식수원, 조사하고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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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입수한 2017~2018년 식수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폭검사를 수행한 한국원자력의학원은 탈북 피검자를 대상으로 핵실험 차수별로 어떤 식수원을 이용했는지 물었다. 선택지는 ▲지하수 ▲우물물 ▲계곡물 ▲수돗물 등이었다. 총 56개 응답(대상자 40명·중복응답) 가운데 28개(50.0%)가 '수돗물', 17개(30.4%)가 '지하수'로 집계됐다. 특히 일반인 피폭량의 수백 배가 검출된 이상 소견자 9명의 경우 미응답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지하수 또는 수돗물을 음용했다고 답했다.


대표적으로 2018년 검사에서 1386mGy에 달하는 피폭선량이 검출된 여성의 경우 북에서 주로 수돗물을 마셨다고 응답했다. 이때 mGy(밀리그레이)라는 단위는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보여주는 '흡수선량'으로, 일반인은 일상에서 5~10mGy 안팎의 분포를 보인다.


북한 피폭 경로는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서 발원하는 물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땅속으로 흐르면 지하수가 되고, 지상으로 솟으면 장흥천을 거쳐 남대천으로 흐르는 물길이 된다. 북한은 이 물길을 핵실험장에서 약 30㎞(핵시설 사고시 영향권은 반경 40㎞) 거리에 있는 남석저수지에 가둬 놓고, 길주군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상수도의 수원지(水源地)로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피폭 검사 이상 소견자의 공통점인 지하수와 수돗물로 귀결되는 식수원 조사는 식수와 피폭간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자료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식수원 문진 결과와 피폭검사 결과 간 관계성을 도출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고, 추가 조사 없이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최경희 샌드연구소 대표는 "북한의 상수도는 '깨끗한 물'을 소독·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먼 지역까지 물을 전달하는 차원"이라며 "주민들의 질병 상당수가 오염된 물로 인한 수인성 질병이라는 것이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을 경우 노후화된 수로관에서 정화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이를 정상 식수로 판단했다면 완전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길주군 수돗물, 거슬러 올라가니 '풍계리 핵실험장'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장흥천~남대천으로 이어지는 경로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장흥천~남대천으로 이어지는 경로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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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장에서 시작된 물길(남대천)을 가둬 만든 남석저수지의 위성사진. 길주군 출신 탈북민은 해당 저수지가 길주군 전역으로 공급되는 상수도의 수원지라고 증언했으며, 실제로 취수탑으로 추정되는 설비가 포착됐다.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핵실험장에서 시작된 물길(남대천)을 가둬 만든 남석저수지의 위성사진. 길주군 출신 탈북민은 해당 저수지가 길주군 전역으로 공급되는 상수도의 수원지라고 증언했으며, 실제로 취수탑으로 추정되는 설비가 포착됐다.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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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군 주민들이 마시고 있는 수돗물과 핵실험장의 연관성은 위성사진으로도 확인된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분석한 길주군 일대 위성사진에 따르면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서 발원한 장흥천은 남쪽으로 흘러 남대천에 합류하는데, 다시 이 물길을 가둔 것이 남석저수지다. 저수지 남측엔 취수탑으로 추정되는 시설도 포착됐다.


피폭검사 대상자인 길주군 길주읍 출신 탈북민 김미래 작가는 "남석저수지에 가면 '수원지'라고 명확히 표기돼 있다"며 "핵실험장에서 흘러나온 물을 그대로 상수도로 연결한다"고 증언했다. 이어 "북한의 수돗물은 전기 문제로 자주 끊길뿐더러 장마철이 되면 벌레와 흙탕물이 나올 정도로 정화가 안 된다"며 "식수와 농업용수도 구분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식수원은 전문가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다. 지질학 연구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만탑산은 애초 균열이 많고 약한 화강암 지대"라며 "이런 지역에서 핵실험을 한다면 암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오염된 지하수가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는 아주 과학적인 의심이다. 한 번 유출되면 통제 불가"라고 우려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풍계리 한 곳에서만 핵실험을 거듭했기 때문에 방사능이 계속 누적된 상태로, 대부분의 플루토늄도 폭발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잔류 방사능이 지하수로 흘러갈 가능성이며, 이는 실제적인 위험(practical risks)"이라고 경고했다.


"北 식수원 연구자료 공개하고 후속연구 이어져야"
풍계리 핵실험장 반경 40㎞ 이내 지역과 장흥천~남대천 위험 지역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풍계리 핵실험장 반경 40㎞ 이내 지역과 장흥천~남대천 위험 지역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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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가 식수원 조사 결과를 피폭과 무관하다고 단정한 오류는 검사를 수행한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수검사에선 의학원의 해석을 개입하기 전에 통일부가 관련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새로운 피폭 전수검사에서의 식수원 조사 데이터를 공개하고 핵실험장 인근 물 환경과 식수 실태에 대한 제반 연구로 이어져야 한다"며 "현재까지 북한의 물 오염 및 식수 여건에 관해 통일부가 외부에 연구용역을 줬거나 국책연구기관이 수행한 연구 보고서 현황을 공개하고 검사 결과 해석과 정책 수립에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통일부는 관련 지적을 수용, 향후 식수원 조사 내용을 피폭검사 결과와 함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길주군과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796명을 대상으로 전면 재조사를 결정한 것은 과거 피폭검사의 한계를 보완하고, 제기된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식수원을 비롯해 공개가 가능한 자료는 최대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 특별보고서는 조만간 중국어판으로 발간된다. 식수원을 통한 피폭 경로를 추적한 결과가 담긴 보고서는 올해 2월 국·영문판으로 국제사회에 공개된 바 있다. 통일부는 이 보고서를 계기로 전수검사를 결정했으며, 올해 89명에 이어 내년에도 순차적으로 검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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