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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된 피폭]①이유도 모르고 '귀신병' 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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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부터 기형아까지…원인 모를 질병 시달려
6차 핵실험 뒤부터 '지하수 오염' 우려 커져
특산물 밀수 남한 위협…"정부가 검증해야"

편집자주한반도를 안보 불안에 몰아넣는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핵실험장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검증하고 대비하는 건 국가의 몫이다. 북핵 문제는 안보를 넘어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조명하고 정부의 과제를 모색한다.

1~6차 핵실험을 모두 경험한 40대 이모씨는 북한에 살던 시절 여러 차례 진행된 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현저히 낮게 측정됐다. 의사도 이상히 여겼지만, 방법은 없었다. 이씨는 "치료를 위해 더 큰 병원이 있는 평양에 가고 싶었지만, 길주군 출신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며 "(피폭 우려를) 이미 알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아시아경제가 최근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인터뷰와 사단법인 샌드연구소를 통해 수집한 피해 증언들은 한결같이 북한 핵실험장 주변의 방사능 누출로 모아졌다.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원인 미상의 소화불량과 암 진단, 두통, 시력 감퇴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폭 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생식기가 없는 기형아가 태어났다는 증언까지 있지만, 주민들은 그저 '귀신병'으로만 알고 있다고 한다.

의사도 진단 못 내리는 질병…"평양 출입금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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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북부핵시험장'이라 부르는 핵실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만탑산에 자리 잡고 있다. 산악 지형이 험준하고 통제된 군사시설인 만큼 외부 지역과 차단됐을 것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교통의 요지다. 평양과 나진을 연결하는 평라선을 비롯한 철도의 중간역과 시발역이 위치했다. 우리 예상보다 많은 주민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지역 주민들은 핵실험이 무엇인지,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면 어떤 피해를 입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씨는 "의사도 처방을 못 내리니 그저 '귀신병'에 걸렸다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며 "주민들은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미제를 이길 수 있는 핵무기를 가졌다고 선전하니 좋은 것인 줄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폭 우려' 지하수 마시는 주민들…"암 환자 급증"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지표수의 합류 지점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제공]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지표수의 합류 지점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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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전후로 암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뒤 2016년 들어 1월과 9월에 각각 4~5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1~3차 핵실험을 겪은 60대 탈북민 이모씨는 "어느 날부터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더니 한 집 건너 하나씩 암 진단을 받았다"며 "장사를 하며 각지를 돌아도 길주처럼 약국에 줄을 서는 동네는 없었다"고 했다.

더욱 참담한 것은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을 우려가 있는 지하수를 식수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북한이 2017년 9월 단행한 6차 핵실험 이후 여러 차례의 지진과 지반이 50㎝가량 가라앉는 지표면 변형까지 확인됐다.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유출 우려가 커진 것도 이 시기다.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에서 발원하는 장흥천은 남대천과 여러 도시를 거쳐 동해까지 흐른다.


또 다른 60대 이모씨는 "2018년 갱도를 폭파한 뒤 2019년 초부터 길주에도 '샘물 상점'이라는 게 생겼고, 샘물 먹기 운동이란 것을 했다"며 "하지만 간부나 사 먹을 수 있지, 서민들은 계속 수돗물이나 지하수를 떠먹었다"고 설명했다. 길주군 일대 수돗물은 남대천에서 끌어오며, 주민들은 산기슭이나 강변에서 나오는 물을 여과 없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실험장에서 난 특산물…'밀수' 통해 주변국 확산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의 송이버섯 산지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제공]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의 송이버섯 산지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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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하수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하수가 오염됐을 경우 농수산물도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길주군의 특산품으로 꼽히는 산천어는 1980년대부터 중앙당 고위 간부들을 위한 '9호 물자'로 평양에 보내졌다. 그러나 2006년 1차 핵실험 뒤부터 진상품 목록에서 빠졌다고 한다. 이씨는 "핵실험 이후부터 산천어의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전했다.


'핵실험장 특산물'의 밀수로 한국도 피폭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표적인 건 '칠보산 송이버섯'으로, 국내에선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무관세 혜택과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과 일본은 1차 핵실험 뒤부터 수입을 금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5·24 조치가 이뤄진 뒤에야 반입이 금지됐지만, 보따리상을 통한 밀수는 여전하다.


2015년엔 중국산으로 둔갑한 북한산 말린 능이버섯에서 기준치(100㏃/㎏) 9배 이상(981㏃/㎏)의 방사성 세슘 동위원소가 검출된 바 있다. 핵분열 시 발생하는 물질이 버섯에서 나온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평양에서 김정은에게 받아 온 송이버섯 2t을 방사능 검사 없이 이산가족 고령자에게 선물로 뿌려 논란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생명 달린 문제…정치 걷어내고 과학 검증해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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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이 같은 우려를 4년간 추적·조사한 결과를 정리, 지난달 21일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핵실험장으로부터 유출되는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타고 주민들과 주변 국가로 확산될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사흘 뒤 통일부는 "방사선 누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상반기 내 전수조사를 예고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7~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탈북민 40명을 조사하고 '교란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우려를 종결한 바 있다. 이후 구체적인 조치가 없는 만큼 이번 전수조사 방침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대북 인권단체와 탈북민 사회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대할 때만큼 민감한 자세로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경희 샌드연구소 대표는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새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남한 주민들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하던 지난 정권에선 과연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먼저였는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먼저였는지 묻고 싶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치적 관점을 걷어내고 과학적인 검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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