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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의 금융라이트]국회문턱에 '재정준칙' 십수년째 공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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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의 험난한 '재정준칙' 노력
발목잡는 입법부, 이번 국회도 하세월
나라빚 1000조…"준칙 없는 게 말이 되나"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송승섭의 금융라이트]국회문턱에 '재정준칙' 십수년째 공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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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돈을 쓸 때 스스로 지키는 규칙이 있으신가요? 현명한 소비자는 한 달 식비를 얼마만큼만 쓰겠다거나, 옷은 일정 금액 이상 절대 사지 않는다거나, 여행처럼 큰 지출이 있었다면 다음 달은 절약한다거나 하는 식의 규칙을 세웁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충동구매를 하기 십상이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가진 돈과 빚을 고려해 재정을 어떻게 관리할지 목표를 세워 관리합니다. 이렇게 재정운용의 목표와 달성방안을 법으로 정한 게 ‘재정준칙(fiscal rules)'입니다.


진보·보수정권 막론…험난한 '재정준칙' 통과시키기

그런데 한국은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입니다. 돈을 얼마나 쓰고 빚을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에 관한 규칙이 없다는 겁니다. 거칠게 말하면 내년에 갑자기 돈을 왕창 써버리거나 빚을 마구 낼 수도 있습니다. 재정준칙이란 걸 한 번도 만들지 않았던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과 튀르키예뿐입니다. 전 세계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해 시행 중인 나라는 106개국에 이르는데 말이죠.

재정준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정준칙 법제화 제안은 십수년전부터 나왔습니다. 2005년 이종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1980년대부터 선진국은 국가채무 급증에 대응해 엄격한 재정준칙을 제도화했다”며 도입을 주장했고, 2009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재정 준칙 기능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했죠. 다음 해에는 현대경제연구원이 법적 구속력을 지닌 재정준칙을 만들고 시행하는 방법을 제시했고요.


2016년 10월 4일 정부세종청사 대회의실에서 최상목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현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16년 10월 4일 정부세종청사 대회의실에서 최상목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현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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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정부·여당 차원의 노력도 시작됐습니다. 2014년 김무성 새누리당 당시 대표는 “재정준칙을 명문화하고 국가부채의 무분별한 증가를 막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추진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다음해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한 재정준칙 도입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자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인 최상목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도 기자회견에서 직접 재정준칙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고요. 2016년 8월 국가채무를 2021년까지 GDP 대비 45%로 묶는 재정준칙안이 입법예고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도 재정준칙안의 도입 시도가 있었습니다. 2020년 7월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한국에 필요한 (재정)준칙이 어떤 것일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10월 기재부는 다시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했고, 11월 말 이른바 ‘한국형 재정준칙’을 입법예고했습니다. 2025년부터 GDP 대비 채무비율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는 -3% 이내로 관리하는 방안이었죠.

재정준칙 가로막은 입법부…이번 국회도 하세월

정권을 막론하고 도입을 추진해왔는데, 왜 아직도 재정준칙 도입되지 못한 걸까요? 바로 정치문제 때문입니다. 2016년 나왔던 재정준칙안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비선실세 개입 의혹과 탄핵국면에 휘말리면서 추진동력을 잃었습니다. 이후 조기대선과 개헌이슈까지 맞물리자 재정준칙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소관 상임위원회였던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몇 차례 심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그대로 폐지돼버렸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5월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5월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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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 때도 국회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1년 가까이 논의가 미뤄지다 2021년 12월이 돼서야 논의가 시작됐죠. 논의 테이블에 오르긴 했지만 실질적인 토론은 오가지 않았습니다. 여야 의원들 모두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대선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해 각 정당은 막대한 돈이 드는 공약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죠.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재정준칙안도 국회에 계류돼있습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제한하고,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서면 재정 적자 비율을 2%로 축소하는 방안이었죠. 각종 세제지원 정책 심의 때문에 심사가 밀렸는데,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통과조건으로 숙원사업 중 하나인 ‘사회적경제 기본법(사경법)‘을 요구해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물론 재정준칙을 도입하려 할 때마다 불거지는 반대 여론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재정준칙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복지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아직 한국의 재정상황은 건전하고 국가가 부담을 지려 하지 않으면 결국 가계 부담이 커질 거라는 경고도 있고요. 정부의 고정된 재정적자 비율이 근거가 없다는 학계의 지적도 있었죠.


1000조 돌파한 나라 빚…"준칙 없는 게 말이 되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1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재정준칙 콘퍼런스에서 축사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1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재정준칙 콘퍼런스에서 축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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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입니다. 국가채무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재정준칙 도입이 늦어지면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빚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근거입니다. 실제 지난해 한국의 국가채무는 1067조7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6%로 사상 최고치죠.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 106개국이 있는 재정준칙이 한국에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재정준칙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보도자료를 내고 반박했습니다. 기재부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재정준칙 관련 법안은 추경 편성사유에 해당하는 경제위기 상황 등에서는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어 재정의 적극적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며 “기준은 재정의 역할과 재정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과거 추이, 주요 선진국 사례, 우리나라의 현재 채무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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