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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의 酒저리]장기 숙성한 우리 머루 와인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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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기 파주 '산머루농원'①

1979년 파주서 산머루 작물 재배로 시작
안정적 수입원 마련 위해 농장서 양조로 외연 확대
2006년 역대급 품질 머루 재배에 걸맞은 제품 필요 판단
10년 이상 오크통서 장기숙성 거친 '머루 드 서'로 차별화

[구은모의 酒저리]장기 숙성한 우리 머루 와인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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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머루)랑 다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


머루는 예로부터 우리 땅 어디서든 흔히 나는 산열매였다. 한국의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어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에도 다래와 함께 등장할 만큼 친숙한 야생 과일이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구황식물로도 많이 이용된 과일이 바로 머루다.

머루가 이 땅에 뿌리 내린지는 오래지만 작물로 상업 재배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산머루농원을 설립한 서우석 씨가 경기도 파주로 처음 이주했던 1979년에도 머루는 산에서 나는 야생 과일이었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서 씨는 결혼 후 파주로 옮겨와 염소 치는 일을 했다. 마을 뒤 감악산에 염소를 방목해 키우며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던 그의 눈에 어느 날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산머루나무였다. 주렁주렁 달린 산머루를 보고 그는 문득 밭에 옮겨 심어 기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때부터 열매가 잘 맺히는 나무들을 골라 이듬해 봄, 밭에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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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밭에 옮겨 심은 머루나무에 기다리던 열매는 맺히지 않았고 서 씨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렇게 실패인가 싶던 차에 남양주에서 개량 머루 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갔고, 그 곳에서 답을 얻었다.


머루는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따로 있었다. 열매가 잘 맺힌 암나무만 골라 심은 그의 머루나무 밭에 열매가 열리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암수가 한 그루에 있는 개량 머루 묘목 1500주를 구매해 1500평에 심었다. 이후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머루 재배 기술을 확립했고, 이후 농가 보급에도 적극 나섰다. 국내에서 머루 생산량이 가장 많은 무주 등에 묘목을 공급한 것도 바로 그였다.

안정적 수입원 찾다 우연히 발 딛은 와인 양조… “농원에서 와이너리로”

머루농사를 짓던 그가 머루로 술을 빚게 된 건 1995년 가공공장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처음부터 머루로 술을 빚을 생각은 없었다. 매년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에 안정적인 수입원의 필요성을 느꼈고, 머루즙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파주군에 머루즙 가공 공장 설립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승인된 사업계획서에는 머루즙이 아닌 머루주가 적혀있었다. 담당 공무원의 실수였다.

서부건 산머루농원 대표는 “담당 공무원이 머루주는 들어봤어도 머루즙은 들어본 적이 없어 임의로 고쳐 승인했던 것”이라며 “황당한 일이지만 아버지는 이왕 공장 설립 승인이 난 김에 머루주도 같이 만들어보자고 해서 양조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더 재미있는 건 아버지는 술을 한 잔도 못 드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처음부터 제대로 빚어낼 수는 없었다. 서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게 처음에는 막걸리처럼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머루주를 빚었더니 머루주가 아닌 막걸리 맛이 나기도 했다”며 “이후 본격적으로 양조에 대해 공부하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지속적으로 컨설팅 받으며 제품을 개발하고 주질을 개선해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수차례 시행착오와 주질 개선 과정을 거쳐 1997년 9월 첫 제품인 ‘감악산 머루주’가 세상에 나왔다.


산머루농원 숙성창고에 머루와인이 저장돼 있는 모습

산머루농원 숙성창고에 머루와인이 저장돼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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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장기 숙성한 머루 와인 ‘머루 드 서’

머루는 익숙한 과일이지만 정작 생머루를 맛본 이는 드물다. 껍질이 얇고 수분이 많아 쉽게 뭉개지고 발효가 일어나는 탓에 일반 마트 등에서 유통이 이뤄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머루농원이 머루주와 머루즙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보관성이 떨어지는 머루의 특성을 고려하면 자연스런 일이겠다.


보관성이 떨어진다고 맛과 영양성분까지 부실한 것은 아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인 머루는 일반적으로 포도보다 신맛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경기 최북단 감악산을 뒤로 한 파주 적성면 객현리 산머루마을은 일교차가 커 머루의 당도가 높다. 여기에 머루는 눈 건강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들어있고, 비타민A를 다량 함유해 안구 건조증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06년은 산머루농원에 또 하나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해였다. 그해 수확한 머루는 유난히 맛이 좋았다. 일반적으로 달고 맛있다는 머루의 당도가 20브릭스(Brix) 수준인데, 2006년 머루는 당도가 최고 24브릭스에 달할 정도로 품질이 좋았다. 양질의 머루가 재배된 만큼 그에 걸맞은 제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산머루농원의 머루와인 '머루 드 서(Meoru de Seo)'

산머루농원의 머루와인 '머루 드 서(Meoru de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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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 와인은 10월 초 수확한 머루로 빚는다. 줄기는 제거하고 열매만 으깨 효모와 함께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에서 7~10일간 1차 발효를 진행하고, 이후 착즙 과정을 통해 찌꺼기를 걸러낸 뒤 다시 탱크에서 15일간 2차 발효 과정을 거친다. 2차 발효까지 마치면 숙성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기존 제품과 차이를 뒀다.


서 대표는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를 위해선 숙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포르투갈에서 오크통을 들여와 머루주를 숙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크통 숙성을 거쳐 2009년 처음 선보인 제품이 현재까지 산머루농원의 간판 역할을 하고 있는 ‘머루 드 서(Meoru de Seo)’다. ‘서씨네 머루’라는 뜻의 머루 드 서는 ‘머루 드세요’라는 의미도 담아 중의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현재 머루 드 서는 오크통 숙성을 거친 ‘드라이’ 제품과 옹기 숙성을 거친 ‘스위트’ 두 가지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드라이 제품은 10년 이상, 스위트 제품은 3~5년 숙성을 거쳐 병입이 이뤄진다. 서 대표는 생산자 입장에서 와인을 10년 이상 지하 셀러에서 숙성하고 보관한다는 것은 수익 측면에서 절대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와인은 잘 알려진 대로 장기 숙성할수록 맛과 향이 깊고 풍부해진다”며 “머루 드 서도 장기 숙성 와인이 지닌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 숙성이란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고 말했다.


산머루농원의 '머루 드 서'는 오크통에서 10년 이상 장기 숙성이 이뤄진다.

산머루농원의 '머루 드 서'는 오크통에서 10년 이상 장기 숙성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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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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