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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의 금융라이트]세상에 도움되는 '불량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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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채권만 집중 구매하는 배드뱅크
그 덕에 은행들은 건전성, 수익성 지표 ↑
배드뱅크는 담보매각, 증권발행으로 수익
"도덕적 해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커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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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세상에 꼭 필요한 ‘불량(Bad)’ 은행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이들은 예금과 대출에 나서지 않습니다. 본인의 역할이 끝나면 홀연히 사라지고요. 다른 은행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떠맡고 ‘선한(Good)’ 은행이 되게끔 도와줍니다. 이른바 배드뱅크로 불리는 금융사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9~15% 값싸게 불량채권 사들이는 배드뱅크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만을 전문적으로 사들이는 은행입니다. 부실채권이란 원리금을 일정 기간 갚지 않아 사실상 떼일 것으로 예상하는 대출들입니다. 원금 1000만원과 이자 100만원을 빌려줬는데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볼까요. 은행 입장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죠.


이때 누군가 1100만원의 ‘돈 받을 권리(채권)’를 500만원에 사간다면 어떨까요? 500만원이라도 건질 수 있으니 은행으로선 다행일 겁니다. 부실채권이 많으면 대외적인 평가도 나빠지는데, 이를 털어버렸으니 건전성 지표도 훨씬 좋아질 거고요. 은행을 경영하는 임원들도 부실에 신경쓰기보다는 미래혁신을 위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드뱅크가 필요한 거죠.


그럼 배드뱅크는 어떻게 부실채권으로 돈을 버는 걸까요? 우선 부실채권은 사실상 돌려받기 어려운 채권이기 때문에 아주 싼 값에 구매합니다. 전체 가격의 9~15% 정도로요. 지난해 인도에서 논의됐던 배드뱅크 설립계획안을 보면 은행에 주는 현금이 ‘1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증권으로 대체했고요. 1억짜리 부실채권을 1500만원의 헐값에 사왔음을 생각하면, 3000만원만 받아내도 2배의 수익률을 기록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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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배드뱅크에는 예금과 대출업무를 보는 은행원들이 없습니다. 돈을 갚지 못한 사람들의 자산을 평가하고 관리하고 추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죠. 투자은행 전문가, 구조조정 전문 경영인, 변호사, 회계사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불량채권과 관련돼있는 각종 담보물을 추적해 팔아치우면서 돈을 회수합니다.


증권시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부실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자산유동화증권(ABS)이라고 불리는 상품을 판매하는 거죠. 돈 받을 권리를 증권화해 다시 한번 현금화하는 셈입니다. 경기가 나빠 휘청거렸다면 주식시장이 활발할 때를 기다려 팔아치우거나,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팔아버리는 방법도 있고요.


이러한 배드뱅크의 처음 등장하게 된 건 대공황으로 불리는 1932년입니다. 당시 미국의 부흥금융공사(RFC)가 설립됐고, 뱅크런(예금인출사태)에 시달리는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습니다.


배드뱅크 설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는데 성공한 미국의 멜론은행. 위기를 극복하고 1991년 성장세(Growth)가 가팔라지고 있다. 자료=맥킨지보고서

배드뱅크 설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는데 성공한 미국의 멜론은행. 위기를 극복하고 1991년 성장세(Growth)가 가팔라지고 있다. 자료=맥킨지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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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뱅크란 말이 확립되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멜론은행’ 사태 때문입니다. 1860년대 세워진 멜론은행은 펜실베니아에서 시작해 미국 내 15위권에 자리 잡은 유망한 금융사였습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부실이 확 늘어나게 됐고 은행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죠. 금융당국에 의해 행장이 해임됐고 새로 온 경영진들이 비용절감과 전략설정으로 극복하려 했으나 손실이 워낙 커 쉽지 않았죠.


이때 뉴욕의 한 벤처캐피탈 회사가 GSNB라는 이름의 아주 독특한 은행 설립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금을 받지 않고 매우 부실한 채권(junk bond)만 사들이는 배드뱅크를 만들려는 방안이었죠. 멜론은행은 곧바로 GSNB와 계약을 맺었고 10억 달러의 부실채권을 팔아치웠습니다. 대가로 GSNB 주식 5억2500만달러를 받았고요.


멜론은행은 마련한 자금으로 급한 단기부채를 끌 수 있었죠. 부실자산이 사라지면서 내부 구성원들도 부실자산에 스트레스받기보단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고요. 멜론은행은 부실금융사의 오명을 벗고 다시 성장세에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멜론은행의 사례를 보고 1990년 전후 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배드뱅크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 냅니다.


불어난 부실위험에…安 "배드뱅크 설립 검토해달라"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실에서 코로나비상대응특별위원회 브리핑을 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실에서 코로나비상대응특별위원회 브리핑을 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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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배드뱅크를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가 터지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한 전담기구로 탄생했죠. 2004년에는 신용불량자의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바 있고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신용회복기금이, 박근혜 정부 때에는 국민행복기금이 배드뱅크 성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꾸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배드뱅크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지난달 말 경제분과 업무보고에서 "소상공인진흥공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를 만들어서 주택담보대출에 준하는 장기간에 걸쳐 저리로 연체된 대출을 상환하는 방안을 관련 분과에서 적극 검토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배드뱅크 설립론이 대두된 배경에는 막대하게 불어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대출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887조5000억원으로 1년 만에 14.2% 폭증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지원책으로 대출만기가 연장되고 이자상환이 유예되면서 부실상황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오는 9월에는 금융지원책도 종료되는 만큼 부실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니, 배드뱅크를 세워 구조조정을 하자는 거죠.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행복기금 접수창구를 찾은 신청자들이 상담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행복기금 접수창구를 찾은 신청자들이 상담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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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배드뱅크가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배드뱅크가 계속해서 부실채권을 사들여 준다고 생각해보세요. 은행은 과거와 달리 꼼꼼하게 대출심사에 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사람에게 대출해 줘버리고 부실이 나도 배드뱅크에 팔아버리면 되니까요. 이러한 현상을 ‘도덕적 해이’라고 합니다. 채무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원금과 이자를 일부 탕감해주는 혜택이 반복되고, 채무자들도 돈을 잘 갚지 않으려는 현상이 발생하고요.


또 과거에 형성된 부실만을 털어낼 뿐 임시방편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잘 갚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죠. 경기가 침체했거나, 코로나19처럼 전염병이 돌았다거나, 정부와 금융당국의 규제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등등이요. 하지만 배드뱅크는 이러한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지 못한 채 배드뱅크를 설립하면, 계속해서 부실채권이 속출하는 현상이 목격되기도 합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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