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금융위기 총 유동성 공급과 맞먹는 수준
시장 상황따라 추가 유동성 공급도 가능
정부 대책의 절반, 한은이 유동성 지원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권해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려면 한국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한은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미 풀기로 한 돈만 2008년 금융위기 유동성 공급량에 맞먹고, 중앙은행이 손실이 날 수 있는 대출을 직접 단행하면 발권력을 남용했다는 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례 없는 양적완화를 단행하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무제한 양적완화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정부와 한은 등에 따르면 금융권은 채권안정펀드와 증권안정펀드 세부 지원방안을 논의 중이며 이번 주 중 세부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다. 채안펀드와 증안펀드는 각각 20조원, 10조7000억원 규모로 구성되는데 한은이 절반(약 15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펀드에 참가하는 금융기관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의 유동성 공급이 가장 유력하다. 산은채를 한은이 사거나, 담보로 발행한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 외에도 한은은 ▲증권사 RP 매입(2조5000억원) ▲국고채 단순매입(1조5000억원) ▲금융중개지원대출(5조원)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단순합산만 해도 24조원대로,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은의 총공급액(약 27조원)과 맞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들은 한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바로 위험부담 문제 때문이다. 한은이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지만, 이 대출은 모두 담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담보로 잡을 수 있는 채권의 범위를 넓히긴 했지만 '담보 있는 대출만 시행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대출부실과 대손비용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추가로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시중은행들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하면 조달비용 상승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시중은행의 부담은 이해하지만 중앙은행이 손실을 떠안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대출을 중앙은행이 하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한은이 전날 뉴욕사무소를 통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방안을 상세히 설명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얼핏 보기엔 미국도 Fed가 직접 회사채를 사들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특수목적기구(SPV)를 중간에 설립하며 여기엔 정부가 보증액을 투입한다. SPV가 위험한 회사채를 사들였다가 손실이 날 경우 정부 보증액에서 손실액을 차감하게 된다.
결국 '전례 없는 대책'이 나오려면 정부가 손실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은행, 한은 등 경제주체가 서로 손실을 각오하고 위험을 분담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 관계자는 "국회에서도 한은이 전례없는 지원을 하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를 살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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