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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보수의 벽 허문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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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종·외국인 차별 인식 개선 중…反트럼프 정서 맞물려 변화 목소리
봉준호 수상 소감서 "방향 지지한다"…주류와 독립영화계 역학관계에도 변화 예고

사진 출처=A.M.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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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미국 할리우드의 지형이 변했다. 봉준호(51)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외국어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오스카) 정상에 오르면서 보수적 전통의 벽을 허문 것이다.


아카데미는 가장 미국적인 영화 축제였다. 태생부터 그랬다. 미국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는 사실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 설립자 루이스 B. 메이어(1884~1957)가 노조를 제어하려 만든 것이다. 학술원이 연상되는 거창한 이름은 노동분쟁을 해결하고 영화 전반의 기술 향상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붙여졌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아카데미상을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감독과 제작자들은 정치 상황에 미묘하게 영향받는다.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모종의 메시지를 던지거나 정치적 현실을 교묘하게 피해 제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저서 '영화를 바라보다'에서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들은 설립 시와 크게 다름없이 고도로 정치적인 사람들이라고 보야야 한다"고 썼다.


사진 출처=A.M.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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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로널드 레이건(1911~2004)과 아놀드 슈왈제네거(73)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존 웨인(1907~1979)과 찰턴 헤스턴(1923~2008)도 전업 정치인 못지않은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두 영화인 모두 리처드 닉슨(1913~1994)과 레이건을 후원했다. 특히 헤스턴은 전미총기협회(NRA) 회장까지 지냈다.

현직 영화인들의 정치성은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잘 나타난다. 작품상 후보작 9편 가운데 5편이 정치 색깔을 띠었다. '장고:분노의 추적자'와 '링컨'은 인종차별 문제를, '레미레자블'은 민중혁명을 소재로 삼았다. '제로 다크 서티'는 오사마 빈 라덴(1957~2011) 추적 과정을, '아르고'는 테헤란 대사관 인질 사건 중 벌어진 비밀 구출작전을 각각 다뤘다.


아카데미는 '아르고'를 택했다. 이유는 명료하다. 할리우드는 유대인 인맥이 지배하는 곳이다. 게다가 미국은 전쟁포로로 잡혔다 탈출하거나 구출돼 돌아온 군인을 최고 영웅으로 대우한다. '아르고'에서 대사관을 탈출한 외교관들은 영웅이었다.


근래 화두는 여성, 흑인, 외국인 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바뀌었다. 반(反)트럼프 정서와 맞물려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아카데미는 조금씩 변화를 실천하고 있다.


사진 출처=A.M.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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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출신 감독이 연출한 '버드맨(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ㆍ2015)'과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기예르모 델 토로ㆍ2018)'에 작품상을 건넸다. 2016년에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스포트라이트', 이듬해에는 성적 소수자를 다룬 '문라이트'에 각각 최고 영예가 선사됐다. 지난해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로마' 또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수주의적 이민정책을 비판한 작품이다.


기존과 다른 수상작들의 면모는 아카데미가 내부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기생충'은 이런 고민 속에서 분명 수혜를 입은 면이 있다. '기생충'은 외국어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데다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첫 작품으로 기록됐다. 아울러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품었다.


파격적인 결과는 할리우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은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한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국적 다양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관객은 자막 있는 영화를 기피한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그저 '로컬(지역영화상)'일 뿐"이라고 밝힌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할리우드는 현실을 자각한 듯하다. 올해 시상식에 앞서 '외국어영화상(Best Foreign Language Fim)' 이름을 '국제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으로 바꿨다. 대상도 비영어권 언어로 제작된 영화에서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만든 장편영화로 달리 했다. 미국에서 반드시 상영돼야 한다는 전제조건 또한 삭제했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달라진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스카의 그 방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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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는 '기생충'을 품으면서 가장 중요한 화제성도 회복했다. 작품상을 비영어권 영화에도 줘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리 강력한 주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현지 매체와 평론가들이 지난 몇 달간 '기생충'에 극찬을 쏟아냈다. 흥행이 최우선인 아카데미는 이런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이번 결과는 할리우드 내부적으로 주류와 독립영화계의 역학관계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1999년 아카데미 작품상은 스티븐 스필버그(74)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닌 존 매든(71) 감독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돌아갔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하비 와인스타인(68)의 미라맥스가 배급했다. '기생충'은 와인스타인 밑에서 경험을 쌓은 톰 퀸의 네온이 배급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기생충'과 경쟁한 '1917'의 제작자다.


이에 노광우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은 "1999년의 데자뷔"라며 "그렇게 미국 영화산업에서 주류와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역학관계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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