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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3월, 봄꽃 대신/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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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손 위로 눈이 쌓이든
잘 빗은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바람이 불든
마음만은 시리지 않으면 좋겠어

가끔은 쓸쓸해도 좋겠지
사람 사는 모양이 다 비슷해서
시를 읽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문득
내 자리만 섬이 되곤 하니까
그래도 길고 긴 이 길 위에서 한 번은
비껴가지 않고 딱 만났으면 좋겠어
밤새 피우다 새벽 비에 꺼져 버린 장작처럼
타다 만 기억을 중얼거리다 고개를 쳐든 그때
눈부신 태양빛 가려 주며
거짓말처럼 그곳에 서서 웃어 줬으면 좋겠어

맞아, 남은 절망은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꽃 떨어진 위로 눈 쌓이든
눈 쌓인 위로 꽃 떨어지든
꽃 진 자리만은 밟지 않겠어


■봄을 기다린다. 꽃을 기다린다. 섣달 초승 꽁꽁 언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벌써부터 꽃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마음이야 어리석은 일인 줄은 잘 알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아니다. 실은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태 미련스럽게도 당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당신께서 떠나시고 작년 한 해 봄, 여름, 가을 무수히도 꽃들이 피고 지는 동안 그리고 서리 내리고 눈꽃이 맺히고 사라지는 겨울 내내 당신께서 오시길 기다린다. 부질없는 바람인 줄은 또한 알지만 하릴없는 일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남은 절망은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꽃 이운 자리에 다시 피듯이 당신께서 "꽃 진 자리"들을 되짚어 내게 오실까 봐 "타다 만 기억을 중얼"거리며 당신을 기다린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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