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도 공공 도시재생사업, 주변 지역 젠트리피케이션 심화..."다같이 잘살자고 세금 썼더니 빈부격차 더 심해져"
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후 기존 주택ㆍ시설물을 모두 철거하는 방식의 '재개발' 대신 기존 시설물을 보수ㆍ리모델링해 낙후된 도심 기능을 재활시키는 대규모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낡은 고가도로를 공중 공원으로 부활시킨 서울로7017 사업, 50년 된 노후 세운상가를 재단장한 '다시세운 프로젝트', 연남동 경의선숲길 조성, 성수동 수제화ㆍ카페 골목 조성 사업, 성곽 마을 도시재생사업 등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공공 도시 재생사업들로 인해 영세 상인 등이 쫓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로7017' 사업의 경우 시는 약 6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안전성 문제로 더 이상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 철거 대상이 된 낡은 고가도로를 공중 공원으로 되살려 냈다. 이후 서울로7017은 지난 2일 기준 방문객 5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지역 명소로 거듭났다.
덕을 본 것은 주변 건물주들이다. 서울로7017과 연결다리를 개설한 한 호텔은 최근들어 거의 매일 만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들에게 서울 도심 주요 관광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숙소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서울로와 인접한 지역의 주택 가격과 상가 임대료도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로 출입구에서 약 300m정도 떨어져 있는 한 아파트는 전용면적 59.94㎡(24평) 형이 최근 8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9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인 5억8261만원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소상공인ㆍ서민들은 쫓겨나고 있다. 최근 만리동 소재 한 식당은 집 주인이 월 임대료를 50% 인상해달라는 요구를 견디지 못해 신당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만리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던 서모(45) 씨도 올해 1월 설을 쇠고 돌아 온 직후 건물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임대기간이 3년6개월이나 남았지만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만리동에서 15년 넘게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선용(49)씨는 내년이 걱정이다. 김씨는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임대료를 높여달라고 할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다시ㆍ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리모델링 후 개장한 세운상가의 경우 비록 시가 주도해 당분간 임대료 인상 폭을 연 9%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협약이 체결됐지만 상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세운상가에서 만난 한 임대차 상인은 "15년 함께했던 건물주가 얼마 전에 가게를 젊은 사람한테 팔았는데 여기에 직접 들어올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며 "내년 초 계약 기간이 끝나는데 임대료를 크게 올려달라고 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의선숲길 개장ㆍ공항철도 개통과 함께 급격히 상업화된 연남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서울연구원의 최근 연구 결과 연남동 일대 부동산 가격은 2013년 이후 두 배 가량 상승했고, 상가 임대료도 세 배 이상 오른 곳도 수두룩하다. 2013년 초 이곳 상가 임대료는 ㎡당 2만4000원이었지만 올해 2분기 현재 3만6000원으로 50% 이상 뛰었다. 반면 식당ㆍ카페가 늘어나는 등 상업화 및 유동인구 증가 등 주거 환경이 악화되면서 거주인구 숫자는 감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성수동 수제화ㆍ카페 골목, 서울숲 인근, 성곽마을 등 도시재생ㆍ개발 프로젝트들이 진행된 지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공공도시재생사업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신촌ㆍ홍대ㆍ가로수길ㆍ경리단길 등 자연스럽게 상권의 이동ㆍ활성화로 인해 발생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성격이 다르다. 공적 재원을 투입한 공공개발 사업이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빈부 격차의 심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공적 재원이 투입된 도시재생사업 때문에 원 거주자들이 내쫓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개발이익을 주민에게 환원하고 재투자하도록 하는 한편 관계 법령을 개정해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가 임대기간 보장ㆍ임대료 상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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